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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공부

판넨베르크 조직 신학 - 신학

by one_soul 2024.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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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단어의 플라톤적 어원은 시인들의 말과 노래를 통해 신성을 통고하는 로고스를 뜻했으며, 신성에 대한 철학자들의 반성적 연구와 같은 어떤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론적 철학의 세 분과들 중 하나를 “신학적”이라고 명명했고 나중에 그것을 이른바 “형이상학”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 분과는 모든 존재라의 원리로서의 신성, 곧 모든 타자를 포괄하고 그것의 근거가 되는 원리로서의 신성을 대상으로 갖기 때문이었다.
 
신학자는 신의 영감을 받아 신적 진리를 선포하는 자이며, 신학은 바로 그 선포다.
 
하나님 자신에 의해, 즉 계시를 통해 하나님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은 신학의 개념 그 자체에 속하는 근본조건이다. 이와 다른 어떤 방법은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을 신에 대한 사고 자체의 모순에 빠지지 않은 채 논리적,일관적으로 사고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피조물이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믿는 그리스도만이 신학적 인식에 참여할 수 있다고는 아직 주장되지 않았다. … 하지만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든지 밖에서든지 어떤 경우에도, 소위 자연적인 신 인식에서조차도,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거나 그분의 영의 사역에 의존하지 않는 어떤 하나님 인식이나 신학은 생각될 수 없었다.
 
중세 스콜라 철학의 명제를 수용했다. 그것은 인간의 신학은 “원형의 신학”을 모형으로 삼고 그것을 뒤따를 때만 가능하다는 명제였다.
 
신학 개념에 대한 후대의 루터교 고의학의 서술 안에서도 그 관점은 유지 되었다. 물론 그 관점은 게르하르트가 앞서 대변했던 견해, 곧 신학의 대상응 영원한 생명의 축복으로 인도되어야 할 인간이라는 견해와는 긴장 관계에 있었다. 게르하르트 자신보다 더 좁게 생각하여 신학을 “실천적 학문”으로 규정하고 신학의 목적을 인간의 축복에 제한했을 때, 신학 개념에는 인간 중심적 경향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경향은 신학 개념이 하나님 인식에 집중했던 정착된 경향과는 모순될 수 밖에 없었다. 구 루터교 신학은 영원한 생명의 축복으로 인도되어야 하는 인간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신적인 구원 계시와 하나님 자신의 구원 의지에 부합한다는 정당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전제는 신학 개념의 규정에서 하위등급으로 밀려나서는 안된다.
 
케커만은 인간의 축복을 목적으로 하는 실천을 신적 기원, 영생이라는 목적 자체, 그리고 영생으로 인도하는 수단이라는 세 가지 관점들 아래서 나누어 묘사했으며, 그에 따라 그리스도교 교리의 주제들을 분류했다. 여기서 신학의 통일성의 근거가 되는 관점은 축복을 목표로 하는 인간의 실천이며, 더이상 하나님에 대한 사유나 신적 계시가 아니다.
 
물론 분석적 방법에 따라 실천적 학문으로 묘사된 케커만의 신학은 아직은 이론적으로는 “신-중심-신학”을 전제한다. 후에 이 방법을 실행했던 루터교 정통주의 교의학자들의 자연신학은 미리 앞서 하나님의 현존재 및 속성들에 대해 가르쳤는데, 그것은 바로 케커남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 사실을 의미한다. 구원론적으로 협소화된 “분석적 방법”은 신학으로 하여금 신학의 중심 대상인 하나님 인식의 둘레를 돌게 하는 대신에 오히려 인간 중심적으로 인간적 구원의 둘레를 돌게 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신학을 어떤 다른 형태의 하나님 인식에 예속되게 만들었다. 여기서 신학은 신론과 우주론이라는 “사변적”주제의 짐을 벗어버릴 수 있지만, 다만 그것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은 영원한 축복이라는 인간의 목적 규정과 그곳으로 인도하는 구원계시의 근원자이신 하나님의 현존재에 대한 확신을 전제하고자 할 때, 신학이 어떤 다른 방법의 확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실천가였던)둔스 스코투스는 하나님만이 신학의 대상이며, 모든 인간적인 신학은 “하나님의 하나님 자신에 대한 앎”에 의존한다고 확실히 주장했다.
 
이제 그리스도교 교리 전체가 이와 같은 넓은 의미에서 신학의 대상으로 이해되었을 때, 이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만을 배타적이고 포괄적인 신학의 대상으로 지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의구심이 머리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알베르투스와 토마스조차도 하나님과 구분되는 피조적 현실성 안의 많은 것들이 그리스도교 교리에 속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하나님과 구분되는 소여성들이 신학 안에서 주제화 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것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라는 한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소여성들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만 신학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하나님은 신학이 다루는 모든 대상과 주제를 하나로 묶는 준거점이며,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신학의 배타적인 대상이다.
 
실제로 오직 하나님만이 신학의 모든 주제와 대상을 하나로 묶는 통일성의 근거이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가 주장한 논증에는 아직 난점들이 남아있다. 이 난점 중에는 영원한 본질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이해 불가능성이 있다. … 우리는 본성 안에 계신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분을 피조적 작용의 근원과 목적으로서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다음 질문이 제기된다. 그것은 하나님 인식을 매개해주는 피조적 소여성들이 하나님 자신의 신성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난점은, 하나님과 구분되는 모든 것은 피조적 본성에 따라 존재의 근원이자 목적이신 창조자 하나님과 관계되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방식으로 피조적인 것들과 관계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놓여있다. 하나님이 피조물 없이도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라면, 어떻게 피조물에 대한 지식이 하나님 자신에 대한 앎에 기여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려면 피조물의 존재가 하나님과 결합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피조물의 존재와 결합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르면 이것은 성육신 사건에서 발생했고, 오늘날의 신학의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바로 성육신 사건에서 위의 질문의 답을 찾고 있다.
 
둔스 스코투스는 “하나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앎” 안에 모든 다른 것들이 그것들의 가능성에 따라 그리고 신적 의지의 대상들로서) 함께 규정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방책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앎 안에 놓인 피조적 사물들은 아직은 하나님의 신성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규정된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들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신학에 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신론으로부터) 성육신으로 소급하여 출발하는 사고가 필수적이다. 피조물과 하나님의 존재적 연합을 목표로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이라는 관점 아래서만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신성에(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분성이 손상되지 않은 채) 속한다고 주장될 수 있고, 그 점에서 그 귀속성은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신학에 대해서도 주장될 수 있다. 단지 이와 같은 귀속성을 통해서만 하나님에 관한 학문으로서의 신학의 일치된 개념은 가능하게 된다. 이에 대한 결정은 하나님 자신 안의 영원한 삼위일체적 삶과 그분의 구원사 안에서의 현재 사이의 관계, 즉 내재적 삼위일체적 삶과 이른바 경륜적 삼위일체 안에서의 하나님의 현재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의에 달려 있다.
 
신학 개념 안에서 신학적 진술의 진리성은 “하나님 자신을 통해 위임을 받은 하나님에 관한 언설”로서 언제나 이미 전제되어 있다. 단지 인간으로부터, 단지 인간적 필요성과 관심으로부터, 그리고 어떤 신적 현실성에 관한 단지 인간적인 관념의 표현에 근거를 둔 하나님에 대한 진술은 신학이 아니라 인간적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다. 또 하나님에 관한 인간적 진술의 의미가 그런 식으로 소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 나아가 그것이 참된 “신학적” 진술로서 신적 현실성을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학적 진술의 깊은 모호성은 그것이 단지 인간의 말에 그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참된 “신학적” 진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에 놓여있다. 플라톤이 신학적 진술들에 대해 가졌던 의심도 이미 그 방향으로 향했다. 말하자면 진술은 “이중적으로, 다시 말해 참이거나 거짓으로 존재한다”. 시인들의 “신학적” 진술은 플라톤에게는 대부분 참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신학적 연구들 그리고 그에 따른 많은 신학 과목들을 통일시키는 깊은 근거는 슐라이어마허 자신에게는 어떤 다른 주제에 놓여 있었는데, 말하자면 그것은 그리스도교 종교의 통일성이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 종교의 신적 진리에 대한 확신만이 그리스도교 교회의 존속뿐만 아니라 교회의 인도를 위한 교육활동을 변호하고 정당화할 수 있다.
 
구프로테스탄트 교의학은 자신의 정체성을 성서가 가르치는 내용의 촐괄적 설명이라고 이해했고, 그 내용의 규명은 성서 해석학이 담당했다. 하지만 근대의 역사비평적 성서 해석에게 성서 본문들은 근본적으로 지나간 시대의 자료들에 지나지 않는다. 성서 본문의 내용이 갖는 현재적 의미는 역사적인 성서 해석의 틀 안에서는 원칙적으로 결정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진술의 진리성을 묻는 질문은 전적으로 교의학에게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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