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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걱정이 될 때 : 기독교인 위로의 글

by one_soul 202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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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6장 25절-34절

 

25“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26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을 해서, 자기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8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하였다. 30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31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4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누가복음 12장 22절-34절

22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23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24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25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26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27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28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29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30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1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32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33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34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오늘 교회에서 들은 말씀이었다. 

 

나는 사실, 성경을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성경을 그래서 꼭 누군가가 해설한것을 우선하지 내가 그 속뜻을 멋대로 헤아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성경은 그냥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고 1차원적으로만 본다면 말이 안되는게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약은 하나님이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게 많다. 지금은 좀 이해가 가긴 하지만, (구약시대에는 죽는게 제일 두려운 벌이었으니까 죄지은자는 죽이는게 효과적이었을거라 생각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전히 이상한게.... 사람들을 막 죽이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여하튼 신약에서는 확실히 좋은 하나님이니까... 그리고 구약도 사실은 그 시절, 구약이 쓰여진 시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미래를 계획한 가장 최신의, 세련된 법률이었다 싶다. 인권도 보장하고, 노예, 범죄자의 인권까지.... 아 말이 샜다. 여하튼 성경을 1차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강박감(?)에 오늘의 성경 구절도 나는 1차원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구절이었다.

 

걱정을 하지 말라니... 걱정하지 않으면 죽는데, 걱정하지 말라니.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고 살수가 있는가. 밥안먹어도 된다고 걱정을 놓으면 굶어 죽을테고, 옷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추워서 얼어죽을 것인데 분명 이 구절은 1차원적인 해석은 해선 안되는 구절이다 생각했다. 미래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가족이나 친족들도 관리를 해야하고, 세상살이 공부도 해야하고, 미래를 위해 걱정하지 않아야 할 게 없다. 그냥 다 떠나서, 먹을것을 걱정하지 말라니. 그럼 하나님을 믿는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나님을 믿는데 굶어 죽은 중세 시대의 거지들, 노숙자들, 병자들은 어떻게 할것인가. 추위에 얼어죽은 동사자들. 길가에서 얼어죽은 동사자들. 누가 떠먹여주지 않으면 죽는 장애인들은 어떻게 된 일인가. 나는 늘 생각했다. 걱정안하면 죽는다고. 지금의 나도 걱정을 머릿속에서 쉽게 떼어내질 못한다. 걱정을 멈추면 아무것도 안하게 될거라고 생각되어서 말이다. 

 

그런데 오늘 설교 말씀에서, 목사님께서는 거의 1차원적인 의미로 이 구절을 해석하셨다. 정말로 진심으로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래의 일을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계속해서 더 깊은 의미의 해설을 들을까해서 기다렸는데 목사님은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정말로 그냥 걱정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끝이었다. 목사님은 만약 은퇴하고 할일 없으면 그냥 기도만하다가 죽을거라고 하셨다. 밥도 안먹고 물도 안먹고 기도만 하다가 죽을거라고 하셨다.

 

솔직히... 나는 그래서 스스로 해석을 좀 더 갖다 붙이는데 끝내기로 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진짜 아무걱정 없이 있으라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내가 오늘 이 구절에 대해 느낀 점은 이렇다. "걱정은 정말로 하지 않기"이다. 이 구절의 말씀에서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정말 1차원적으로 진심으로 걱정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때 걱정이라는것은 심란한 마음을 뜻한다. 불안하고, 초조해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불안정한 마음 상태가 되지 말라고 하신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초조하게 하더라도 걱정을 줄어들게 하지 못한다. 어떤 해결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대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생각'을 하도록 해라. 문제가 있으면 걱정을 하지 말고, 해결책을 짜라. 이때 마음은 자신감 있고 담대하게. 그리고 만약 실패밖에 답이 없더라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더라도 걱정은 하지 말아라. 누군가 죽더라도, 모든게 파괴될지라도 걱정은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죽더라도 영혼은 하나님께서 살려주실것이고 파괴되더라도 , 잡혀가 노예가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솟아날 구멍을 만들어주시고, 영혼까지는 노예로 만들지 않을것이기 때문이다. 요셉도 형들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지만 훗날 총리가 되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며, 죽더라도 영혼은 하나님께서 단단히 잡아주신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것들에 담대하고 자신감을 가져라. 문제가 있으면 자신감을 가지고 해결을 해라. 미래에 돈이 없어서 굶어 죽을 것 같다면 걱정을 하지 말아라. 걱정 대신, 오늘 일을 해서 돈을 벌어라. 하나님에게 돈을 버는 지혜를 알려달라고 부탁해라. 설령 노력했는데도 미래에 돈이 없어 굶어죽더라도 후회하거나 슬플일이 아니다. 죽음이 꼭 나쁜것만은 아니다. 그냥 하나님이 부르셔서 가는거지, 과거에 돈을 못구해서 죽었다는 결과가 일어난게 아니다. 그냥 운명이다.

 

즉,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모두 해결해주신다. 라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라기 보다는, 걱정하지 말아라, 그대신 담대함을 얻고 해결책을 찾아라.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다. 라는 뜻 같다. 만약 사람이 먹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살도록 해주신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사람은 스스로 찾아서 먹어야 산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건, 사람이 스스로 찾으면 좀 더 쉽게 찾도록 해주는데까지다. 물론, 세상 어딘가에서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그런 기적은, 정말 불가피할때일것이고, 우리 보통 일상속에 사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생존을 위한 정도만큼은 해야한다. 그리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저절로 해결되리라고 생각하는것은 뭔가 왜곡된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라는 이 말 하나 만큼은, 믿어지는 말씀이다. 걱정을 우리가 한다고 해서 그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하고 초조해한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걱정대신, 고민을 하고 해결을 봐야한다.

주저앉고, 힘들어하기 보다는 , 일어서서 분주하게 이리저리 알아봐야한다. 물론 이때 마음에 평정심이 있어야 한다. 걱정이 아닌 평안. 여유가 있어야 한다. 해결 할 수 있으면 다행이리라. 그러나 만약 해결하지 못하고 파멸만이 남았다면, 그래도 걱정하지 않으리라. 왜냐하면, 파멸하더라도 내 영혼은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상에서의 문제들은 우리 영혼을 근심하게 하지 못한다. 내가 육체뿐이라면 육체는 근심할 수 있겠으나 '나'는 영혼이기에. 죽더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일 것이고 죽어서 내 영혼은 하나님 품 안에 안긴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직 담대함만이 있을 것이다.

 

오늘 그렇게 생각이 들고 나자, 내 오랜 지병인 우울증에 대한 해결책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했다.

딱 생각이 들기로, 이제부터는 걱정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힘을 내리라. 하고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순간, 딱 이순간 전의 우울한 기분이 드는 나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어떤것도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내가 원하는 바대로 조종할것이다. 내가 나의 선장이 되리라 마음을 먹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 우울증은 만성적이긴 한데, 아마도 무의식 깊은 곳에있는 불안이 원인인것도 같아서 여러가지 시험해 보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내 우울증의 원인을 잘 모르겠다. 너무 많은 가설들이 있어서 특정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마음이라는 것은 엮이고 엮여서 만들어지는 아주 어려운 매듭같은 것이라서 한가닥만 푼다고 해결되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만 덜어져도 내 마음이 많이 가벼워질거라 기대해본다.

 

오늘 설교가 도움이 정말 된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설교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걱정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다. 사람의 걱정은 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의문이 하나 있었는데, 내 인생에 걸친 불우한 사정에서 생긴 의문이 었다. 그런데 오늘 설교가 그것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나의 마술적 사고, 미신 같은 의문을 해결해 준 설교였다.

 

하나님께도, 목사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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