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이 그렇게나 좋다고들 하는데요. 아마 금식에도 방법이 따로 있겠죠? 하는 목적이라던가, 금식을 하는 이유 등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 하는 법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금식을 해본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인터넷이 있습니다.
금식을 한다는 것...
금식은 단지 음식을 먹지 않는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한다는 의미
금식을 찾아보니,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금식 기간에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음식을 먹는 것 외에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삼가고, 영화나 뉴스 등 대중매체도 삼가고 , 사회생활도 삼가는 등 온갖 오락거리에서 멀어져 조용히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를 병행하는 것이었습니다.
NIV 성경 사이트에서의 성경에서 말하는 금식의 중요한 이유 10가지는 이렇다
1. 더 깊이 기도하기 위해 (스 8:23)
구약 성서의 수많은 사건들은 금식을 기도하는 것, 특히 중보기도와 연결시킨다. 금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의 기도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기독교 저자인 '아서 월리스(Arthur Wallis)'가 그의 저서 '하나님이 택하시는 금식' 에서 말했듯 금식은 '우리의 기도에 긴박하고 끈질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간청하는 바를 하늘에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다.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위해 (삿 20:26)
기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기 위해 하는 금식은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더욱더 적극 반응하기 위해서이다.
3.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삼상 31:13)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금식의 주된 이유들 중 하나이다. 심지어 슬픔으로 인해 눈물이 날 때 우린 먹고 싶은 식욕도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슬플 때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은 종종 우리에게 먹으라고 권유하기까지 해야 되는데 이는 슬픔에 대한 우리 몸의 적절한 반응이 금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무엘하 1장 12절에서도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그들의 백성과 민족을 위해 '저녁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고 말했음을 알 수 있다.
4. 보호를 구하기 위해 (대하 20:3-4)
구약성서에서 나타나는 금식의 또 다른 이유는 적이나 어려운 상황으로부터의 벗어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금식은 다른 믿는 자들과 함께 행해진다.
5.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 (삼상 7:6)
이러한 금식은 우리의 죄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고 경건한 순종의 길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보여준다.
6.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 위해 (왕상 21:27-29)
신학자 '도널드 휘트니(Donald Whitney)'는 그의 저서 '영성훈련'에서 "단식 자체가 신 앞에서 겸손한 것이 아니라 겸손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상기시킨다.
7. 하나님의 일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기 위해 (느 1:3-4)
느헤미야처럼 금식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특정한 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나타내는 가시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8. 타인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사 58:3-7)
우리의 식사시간을 금식하고 이를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데 쓸 수 있다.
9. 유혹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마 4:1-11)
금식은 우리에게 다가온 여러 유혹들과 씨름하고 있을 때 집중하도록 도울 수 있다.
10.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배를 표현하기 위해 (눅 2:37)
'존 파이퍼(John Piper)' 목사가 그의 저서 '하나님께 굶주린 삶'에서 언급했듯 금식을 통해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것' 임을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출처] 기독교 일간지 신문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08381#share
위의 기사에 따르면 금식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자신을 내어드리는, 그리고 진정성을 '표현'하는 방법인 것 처럼 나오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때, 혹은 슬픔을 표현할때 하나님께 기도의 진정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눈물을 흘리듯이 말이죠. 눈물은 슬플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며 저절로 슬픔의 표현이 됩니다. 위에 기사에서와 같이 먹을 의욕을 잃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슬픔이 우리를 덮칠때에도 저절로 금식이 되며 슬픔이 표현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슬프지 않더라도 하루나 이틀정도를 금식함으로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금식의 이유 간략 3가지
-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 하나님께 더 진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금식의 기원
금식의 성서적 배경 1. 역사적배경
구약에서 금식이 요구되는 경우는 연중 단 일회로서 속죄일 뿐이다(출 20:10; 레 16:1-34; 23:26-32; 35:9; 민 29:9-11). 이 날은 음식을 금하여 몸과 영혼에 고통을 가하면서 회개하여 죄를 씻고 속죄제를 올린다 .따라서 금식의 성서적 의미는‘참회를 위한 고행" 과 그를 통한‘죄로부터의 정결’이다. 그래서 율법으로 요구된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참회가 요구될 때(삼상 7:6; 욘 3:5), 위기에 처해 간절하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할 때 (삼하 12:21-23; 에 4:16) 사람들은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과 소원을 표현했다. 그 외에 애도(哀悼)를 위한 금식도 있었다(삼상 31:13).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에는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금식이 일년에 네 번 있었다(슥 8:19).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금식하는 사람들은 죄, 죽음, 또는 어려움 등으로 인한 마음의 "슬픔"을 표현한다 .
1세기를 전후해서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 한 주에 두 번씩 자발적인 금식을 했다(눅 18:12; 디다케 8:1). 그 관행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개인과 세상의 죄에 대해 슬퍼하는 마음을 담은 경건과 헌신의 표현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마 6:16; 눅 18:12). 일반 대중들에게 영향력이 있었던 바리새인들의 종교적 관습은 당시 경건을 추구하던 사람들에 의해 일반화되었을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 당시 세례 요한 제자들의 규칙적인 금식은‘회개의 전파"와‘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갈구하는 의미에서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는 예수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기다리던 마가 공동체도 규칙적인 금식을 실행했다는 것이 20절에 암시되어 있다. 따라서 금식을 놓고 왈가왈부했던 종교적 갈등은 마가 공동체의 것이 아니라 예수 당시의 것임에 틀림이 없다 .
출처 : https://www.cjob.co.kr/christianity/802
금식할때 주의할 점
- 물은 꼭 마시도록 한다. 물은 2-3일만 안마셔도 탈수 증상이 올 수 있는 생명활동의 기본적인 물질이다.
- 금식기간은 자신의 몸의 상태, 컨디션등을 보고 결정한다. (몸이 상할정도로 금식하지 않도록 한다.)
-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금식한다
- 금식하는 것으로서 자신의 공로로 만들지 말 것.
- 사람들에게 자신이 금식한다고 일부러 드러내지 말것
- 하나님에게 더 진정성 있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금식할 것
- 금식하면서 하나님에게 자신의 소원을 호소하기 보다는,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 깊게 알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할 것
천국에서도 금식을 할까?
예수는 지상에 있을 때 금식과 금욕의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는 ‘먹보"요 "술꾼’이라고 비난을 받을 정도로 잔치와 축제의 메시아였다(마 11 :19; 눅 7:34). 하나님의 나라는 메시아의 잔치를 수반하는 환희와 행복의 사건으로 비유된다. 이곳 본문에서는 예수가 즐거운 혼인 잔치의 신랑으로 제시된다. 유대의 혼인 잔치는 음악과 시끌법석한 행렬이 이어지는 기쁨과 축제의 현장이다(마카비 상 9:37 이하).
예수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하는 사건은 그 자체로서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는 혼인 잔치의 기간이다. 예수의 존재는 인간의 모든 암울한 억제를 타파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강력한 진입을 뜻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분명히‘회개"를 외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다(막 1:15). 죄를 위한 참회와 가슴을 치는 애통함, 그리고 새로운 삶으로의 결단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회개로 시작한 그 나라의 삶 자체가 침침한 억제와 구속(拘束)의 소극적 퇴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의 회개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활력이 넘치는‘새로운 창조"(고후 5:17; 갈 6:15)이다. 신랑과 같이 있는 혼인 잔치에서 인상을 찡그리며 금식을 하는 우스꽝스러운‘신랑의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의 창조적 활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왜곡된 종교인들에 대한 패러디 (parody)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슬픔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어두움과 그늘에 대한 부정은 자못 강경하다.‘금식하지 않아도 된다"가 아니다. 오히려 분명하게 “금식할 수 없다”(19 절)고 한다. 슬퍼해서는 안 되고 기뻐해야만 된다.
이 글에 따르면 천국에서는 금식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금식은 대게 슬픔의 표시로서 행해지기 때문에 영원한 잔치가 지속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금식은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천국에서도 먹는 일이 필요할지조차도 저는 의문입니다만 말이죠. 천국에서는 먹지 않고도 영원히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ㅎㅎ
슬픔이 씻은바 되길
혹시 어떤 슬픈일이 있어서 금식을 결심하게 되신 분들이 이글을 보게 된다면, 금식을 함으로서 그 슬픔이 씻은바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형제애가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 있든, 어느 시간에 있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슬픔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꼭 슬프지 않더라도, 다른 슬픈 누군가를 위해서 금식 기도를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저도 이제부터 금식 기도를 시작해 볼텐데요. 모두 열심히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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