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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마음공부

기독교 마음 공부 : 죽음 앞에서

by one_soul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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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울증 환자였고 지금도 우울하지만, 많이 나아졌습니다. 저는 종교로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사선생님에게도 도움을 많이 받았구요.

 

사실, 어릴때부터 낯가림이 심하고 소심해서 대인관계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순진하고 눈치가 없어서 어릴때는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놀림도 받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좋은일인지 나쁜일인지 모르지만, 눈치가 없었던게 우습게도 친구들이 저에게 한 나쁜일들을 눈치 못채게 했고, 그래서 많은 다른일들도 저에게 상처를 그다지 주지 않고 의미 없이 지나가게 했기도 했달까요. 눈치가 워낙 없어서... 따돌림당하던 당시에 따돌림 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어른이 되고나서야, 그때의 아이들이 짖궃었구나... 하고 되돌아볼 뿐... 제 스스로는 제가 눈치를 잘본다 생각했는데... 어릴때에 한이 많습니다.

 

저의 우울증은 사실 타고난게 80%이상인것 같습니다. 저희 외가쪽으로도 우울증이 있고, 친가쪽은 친할머니께서 우울증이 계셨던것 같습니다. 아니 친할머니는 우울하시기 보다는 외톨이이십니다. 괴팍하고 사람들을 미워하시죠. 동네 사람들에게 악마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한편 잘 생각해보니 친할아버지도 언젠가 말씀하시길, '나는 어떻게 웃는지 잊어버렸다'라고 하실정도로 홀로 어딘가 우울하셨던것도 같습니다. 친할머니가 친할아버지를 너무 괴롭혔지요...두분다 밝은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십니다. 다만 친할아버지는 훌륭하신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앞에서 모범적이셨고 저를 예뻐해주셨습니다.

 

여하튼 그래도 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칠 부모님이 중요할텐데요. 두분은 우울증이라기에는 거리가 먼... 정말 당당하고 앞에 나서서 사람들을 주도하는, 적극적이고 주인공같은 성격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께서는 제가 어릴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우울증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고, 또 무관심 하셨던 것 같습니다. 두분과 너무나 다른 타입인 저의 성격을 보고 저에게 나약하다고 하거나 바보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악의적인것은 아니고, 정말 이해가 가지 않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것 같다고 지금의 저는 생각합니다. 두분 다 한번도 나약한 마음의 소유자인 사람의 입장에서 서본적이 없었던거죠. 저와 부모님은 너무나 달라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겁니다. 지금 아버지는 하늘나라에 가시고 어머니만 남았는데 어머니는 제가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저의 우울증의 심각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모든걸 저의 탓으로 돌리는것을 그만두셨습니다. 여기까지에 이르기에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도움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제 이야기라 조금 부끄럽지만, 여하튼 저는 짧지만 그런 인생을 지내왔습니다. 평생을 우울한 기질로 살다보니 인생이 흘러가는대로의 경로대로 살아온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저보고 착하고 순진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답답하고 세상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저도 제가 아둔하고 세상 경험이 적다는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울증과 치열하게 싸워온 내막이 저에게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곤 합니다. 힘든와중에는 힘들다는것을 자각할 새도 없달까요. 저는 우울했던 지난 상태와 지금의 무감한 저의 상태가 거의 분리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은 상태입니다.) 그냥 볼땐 전 그냥그런 상태처럼 보이지만 돌이켜보면 어렴풋이 제 안에 어딘가에 우울했던 내막이 '있었다는것'을 기억하게 되곤 합니다. 당시엔 모르다가 지나고보니 저의 마음상태가 전쟁터였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 제가 가지만 앙상하게 있는 허전한 상태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태풍이 지나간 후 남아있는 앙상한 나무랄까요. 그런데 태풍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것이죠. 지난 시간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편 제가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는건 언제 그런 느낌이 드냐면 예를 들어 다른 또래의 사람들이 한창 무언가에 열중하고 즐길때 저는 그 모든게 관심도 없고 모든것이 헛되어 보인다 생각이 들때랄까요. 그나마 게임과 같은, 현실 도피를 할 수 있는 일은 좋아합니다. 그것도 같이하는 게임이 아닌 저 혼자서만 집중할 수 있는것들에만요.(우울증이 도지는 날에는 게임도 싫지만요)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회속에서 무언가를 즐기는것들은 피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을 아주 많이 자게 됬습니다. 저는 잘때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행복할때는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 잠깐동안 깨어있는 그 시간입니다. 깨어있는 동안은 뭔가 힘들거든요. 마비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타고나길, 감정이나 자아가 약해서 저조차도 저의 존재감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제가 평소엔 공허한 의식에 있다가 어느순간 파도와같이 우울증이 강하게 덮치는데 그에 대해 너무나 무력한 자신을 보곤 합니다. 그리고 지난 몇년간은 우울감이 더 심해져 세상에 대한 증오로까지 변했던것 같습니다. (정신과 선생님께서는 우울증이 나아져서 증오가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우울감이 심해진게 아니라 나아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세상 모든것이 싫게만 보였습니다. 보이는것, 들리는것, 살아있는것 모든것을 제 마음이 거부했습니다. 오직 침대만이 제 친구였습니다. 저를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잘 수 있게 해주는 침대말이죠. 이와중 가족의 도움은 없었습니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어머니는 제탓만 했거든요. 어머니는 저를 정신병자라면서 외면했습니다. 동생은 모르겠습니다. 동생은 저에게 관심이 없는듯 했습니다. 지금도 그 속을 저는 모릅니다. 절대 속마음을 이야기 안하거든요. 어쨌든 저는 누구도 모르게 점점 세상과 동떨어져만 가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제가 이 세상과의 연결이 점점 멀어져가도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죠. 저도 저를 버린 상태였습니다. 마음속 깊은곳부터 썩어들어가는, 마음에 암이 뒤덮인 상태와도 같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며칠동안 잠만 자다 힘내어 기도하기를, 계시를 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하나님이든 누구든 신이 있다면 답해달라고 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계시를 말이죠. "하나님, 평생 죽음을 동경했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계시를 빌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며칠후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계시를 받았습니다. 어떤 계시였는지는 비밀입니다만, 드디어 저는 하나님께 제가 죽어도 좋다는 듯한 계시를 받았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듣기에도, 제가 생각해도, 좀 이상한 논리가 제 마음속에서 떠올랐습니다. 그 계시를 받자 제 마음속에서 변화가 생겼던것 같습니다. "죽어도 좋다"라는 그 계시 속에 신의 다정함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는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계시에 대해서 감사함이 느껴졌던것 같습니다. 정말 깊은 고통의 간절한 상황속에서 신에게 응답받는 느낌이 짐작가시겠습니까? 탈진한 가운데 희미하게 감사함이 퍼져나갔습니다. 마음의 안락사일까요. 마음에 평온이 몰려왔습니다. 기나긴 싸움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끝났다 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동시에 잠시후 이어서 같이 드는 느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동안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도 공감받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선생님은 제가 이겨내길 바라기에 공감해주지 않으셨던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괴롭다'는것 입니다. 죽을만큼 괴롭다는것이요. 그러나 어느누구도 그것을 인정해주거나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계시를 받고 이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와중 머릿속에서 점점 퍼지는듯이 이상하게 제가 괴롭다는것을 '공감'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저를 영혼 깊은 곳까지 전부 다 아는 누군가가 보내는 공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보고 '죽으라' 허락하시는 것은 저의 그간의 고통에 대한 '인정'인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제 고통을 하나님은 그동안 보고계셨고 드디어 허락해주신걸까요? "죽어라" 라는 메세지는 많은것을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1차적으로는 저의 마지막을 선고하는 말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계시가 "네 고통을 이해한다"라는 것을 함축 하고 있다는것이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런 긍정적인 사고방향은 우연히 일어난걸까요?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 제가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궤변일까요? 세상에 저보다 괴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들이 살아있기에 떳떳하게 신에게 제가 죽게 해달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실때도 아버지는 끝까지 힘겹게 견디셨습니다. 아버지는 그토록 생을 원했는데 저는 반대로 생을 내던지고 싶다는 마음을 바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께서 "죽어도 좋다"라고 하시니 그것이 다정하게 느껴지는게 이상한걸까요? 공의롭지 못한 저의 제멋대로의 마음을 허락해주신것에 다정함을 느낀것은 제 어리광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일까요?

 

아무리 마음이라는것은 먹기 나름이라지만 죽으라는 계시가 갑자기 '위로'와 '인정'으로 받아들여지는게 제멋대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당시엔, 제 평생 태어나 처음으로 제 전 생애에 대한 고통이 위로를 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죽음에 대한  '허락'의 계시는 짧고 분명하고 담담했습니다. 계시라는것은 아주 투명한것 같습니다. 모든 편견을 넘어 마음에 직접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 계시는 담담하고 투명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저는 정말 생각치도 못하게 다정함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세상이 증오스러운 가운데 '죽어도 좋다'라는 메세지가 다정하게 느껴지는건 저처럼 우울증을 겪은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우울한 사람도 저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요? 그 계시 속의 위로는 벗어날수 없는 고통에서 해방시켜줄 안락사를 떠올리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음속에서 무언가 변화하는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로서는 스스로 1센티도 움직일 수 없었던 무언가가 옮겨졌던것 같습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죽음으로부터 회생하듯이 삶에 대한 어떤 가능성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엔 명백하게 하나님의 영향이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한스러워했던, 나를 이세상에 태어나게 한 근원인 하나님에대한 분노가 걷히고 그대신 제가 잊고있던 하나님의 진정한 본성이 제 마음에 느껴졌던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본성...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그 일부를 체험한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만약 '죽으라'는 신의 계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안에 신의 위로가 함께 있음을.

 

하나님이 정말 계신다면, 저보고 '죽으라'할게 아니라, '힘내라' 혹은 '죽지마라' 라고 그러거나 치유를 해주어야 한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죽으라'라고 하셨기에 정신을 차린것도 같습니다. 한편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제가 받은 죽음의 계시는 잘못된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종교의 신도, 인간에게 '죽으라'고 '계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리고 선생님은 저보고 '그렇게 계시 받았는데 어떻게...살아있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자세히 설명하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아직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되서요. 그러고보니 선생님이 오해하실것도 같네요.

 

이제부터 글을 좀 더 적어가면서 우울속에서 벗어나보려고 합니다. 이렇게 글로 적으니까 좀 더 생각이 정리가 되는것같네요! 그리고 제 글을 보고 누군가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우울한 사람보고 신께서 죽으라고 허락했다는 글이 아닙니다. 저의 우울 속에서 하나님의 위로가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글입니다. 작은 밀알씨가 있어 죽어서  썩어져야 결실을 맺을 것이니... 제가 경험한 건 아마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을 영혼의 죽음의 단계 중 하나를 겪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거듭난다는것은 영혼이 죽어 새로이 태어남을 의미한다 배웠습니다. 아직 갈길이 멀었다는걸 알지만 제가 깨닳음을 디딤돌 삼아서 한걸음 나아갔다는 생각이 듭니다. 느림보에 겁도 많은 저이기에 제 이야기가 세상이 보기엔 별일 아닐지라도 그래도 뭔가 이야깃거리가 된다고 싶어서 적어봅니다. 다들 위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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