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3
Leviticus 13
레위기 13장에서 왜 피부병에 걸린 사람이 부정하다는거야?
레위기 13장에서 피부병에 걸린 사람을 "부정하다"고 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료적 측면**과 **종교적, 상징적 측면**입니다.
### 1. **의료적 측면**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전염병이나 질병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특히, 피부병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공동체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감염된 사람을 격리하고 "부정하다"고 규정하는 것은 실질적인 예방조치였습니다.
- 피부병은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신체의 변형을 일으키는 질환이었고, 전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감염을 막기 위한 격리 조치로서 이런 규정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 "부정하다"는 표현은 단순히 영적인 부정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상태를 공동체로부터 격리할 필요성을 의미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 2. **종교적, 상징적 측면**
이스라엘 사회에서 "정결함"은 단지 육체적인 의미를 넘어서, **영적**이고 **종교적인** 개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레위기에서 "부정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떨어져 있음을 상징하며, 거룩함과 완전함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원칙이었습니다.
- **거룩함과 완전함의 상징성**: 피부병 같은 육체의 변형이나 손상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상징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병은 인간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 가까이 갈 수 없는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 **정결함과 부정함의 이분법**: 레위기 전체는 정결함(정한 것)과 부정함(부정한 것)의 구분을 중심으로 합니다. 이 구분은 단지 질병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음식, 행동, 제사의 규정에도 적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었습니다.
### 결론
피부병에 걸린 사람을 "부정하다"고 한 것은 단지 신체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공동체 내의 **정결**과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규정이었습니다.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시적으로 멀어지며, 회복될 때까지 격리되고 정결 의식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공동체의 건강을 보호하는 한편, **정결함**을 유지하는 영적 상징으로도 작용했습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차별적이거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적 관점에서, 죄짓는것이 부정한게 아닐까? 그렇다면 구약때의 사람들은 병에걸리는게 죄짓는것과 연관되는건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죄**를 도덕적, 윤리적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이해하며, 부정함을 죄와 같은 개념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질병과 부정함을 현대적 도덕적 개념인 "죄"와는 다르게 여겼습니다.
### 1. **죄와 부정함의 구분**
구약에서는 죄와 부정함이 분명히 구분되었습니다. 부정함은 도덕적 죄악이라기보다는 **정결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종종 **일상적이거나 자연스러운 과정**과 관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 여성의 월경이나 출산, 사람의 죽음과 같은 상황들은 모두 부정한 상태로 여겨졌으나, 이는 **도덕적 죄**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 **피부병**에 걸린 사람도 도덕적으로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상태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병에 걸리는 것은 도덕적 죄가 아닌, 자연적이거나 피할 수 없는 일로 보았습니다.
### 2. **질병과 죄의 연결**
구약 성경에서는 질병과 죄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경우도 있지만, 이는 항상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 **죄의 결과로 질병이 생긴다**는 개념은 종종 구약 성경에 등장하지만(예: 신명기 28장에서는 불순종에 대한 저주로 질병이 언급됨), 질병을 무조건 죄와 연결시키지는 않았습니다.
- 예를 들어, 욥기의 경우, 욥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질병을 겪습니다. 이는 질병이 반드시 죄의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9장에서 맹인이 된 사람이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3. **부정함의 상징적 의미**
부정함은 주로 **영적 순결**과 관련된 개념이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정결**이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었고, 부정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에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함이 항상 도덕적 잘못과 연관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 부정함은 하나님 앞에서 **불완전함**을 나타내는 것이었지, 반드시 죄악이나 도덕적 타락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은 시체를 만지는 것은 부정했지만, 그것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 4. **현대적 관점에서의 해석**
오늘날 우리는 질병을 도덕적 결함이나 죄의 결과로 보기보다는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관점**에서 이해합니다. 병은 죄나 도덕적 잘못과는 상관없이, 신체적 상태의 이상으로 보고, 치료나 회복을 추구합니다.
-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죄는 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이고, 질병은 이러한 도덕적 문제와는 별개로 다루어집니다.
- 구약의 정결법들은 종종 종교적 상징과 관련이 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규정이었습니다. 이 규정들이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 죄와 부정함을 동일시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 결론
구약의 부정함 개념은 도덕적 죄와는 구분되며, 질병은 그 자체로 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부정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요구되는 **정결함**과 관련된 규정이었고, 이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지키기 위한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에 걸리는것은 우리 의지대로 되는게 아니잖아. 우리 의지대로 병에 안걸릴수 없는게 아니잖아. 누군가 하나님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병에 걸려도 그 사람은 부정한거야?
네, 구약 성경에서 **병에 걸리는 것**은 의지와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한 상태로 간주되었습니다. **부정함**이란 도덕적 잘못이나 죄악과는 분리된 개념으로, 단지 특정 상태에 따라 규정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부정함**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 1. **부정함의 의도**
부정함은 병에 걸린 사람이 하나님을 덜 사랑하거나 죄가 있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부정함은 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결함을 요구하는 규정**을 따르는 것이었고, 이는 개인의 도덕적 상태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병에 걸리면 부정한 상태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병에 걸린 사람을 죄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정결하지 않은 상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도덕적 비난**이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부족**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습니다.
### 2. **정결함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병에 걸린 사람도 여전히 사랑하셨습니다. 병에 걸린 것이나 부정한 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부정함은 **의식적인 정결함을 지키기 위한 규칙**의 일환으로, 일시적으로 부정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절차들이 주어졌습니다(정결 예식이나 제사 등).
- 예를 들어, 레위기에서 **피부병이나 다른 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부정한 상태로 여겨져 일정 기간 격리되었고, 나중에 **정결 의식**을 통해 다시 정결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는 병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격과는 무관하게, 그저 당시의 **종교적 규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 3. **현대적 이해**
오늘날 우리는 병을 도덕적 상태와 연결짓지 않습니다. **병에 걸리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며, 그 자체로 도덕적 가치판단과 연결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도 병에 걸릴 수 있으며**, 이는 신앙의 깊이와는 무관합니다. 현대의 신앙 생활에서는 질병을 도덕적 죄나 부정함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극복할 시련**이나 **치유와 회복**의 대상이라고 여깁니다.
### 4. **하나님과의 관계**
따라서,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도, 그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구약의 부정함 규정은 **당시 사회적, 종교적 맥락에서의 규율**이었고, 이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끊거나 훼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도덕적 상태와 병을 별개로 보시며, **사랑과 구원의 대상**으로 인간을 보십니다.
결론적으로, 병에 걸린 사람이 부정한 상태로 여겨졌더라도, 이는 도덕적 비난이나 신앙의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종교적 규범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규정**이었을 뿐입니다.
죄가 없어도 부정하면,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없으니 그것은 차별받는것이 아닐까?
구약 성경에서 "부정함"은 도덕적 잘못이나 죄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부정함은 단지 일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결 상태를 잃은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그 당시 **종교적, 의식적 규정**에 따른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부정함이 곧 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상태로 여겨졌던 것이 **차별**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의문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 1. **부정함과 정결함의 차이**
구약 시대에 "부정함"이라는 개념은 여러 상황에 따라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출산, 월경, 죽은 동물이나 사람을 만졌을 때**, 그리고 피부병이나 기타 질병에 걸렸을 때 부정한 상태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정함은 죄와는 무관하며, 단지 **정결 예식을 거쳐 다시 정결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일시적 상태**였습니다.
-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 곧 죄인이 아니었고,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멸시하지 않았습니다. 부정함은 당시 **의식적 규칙**에 의해 규정된 것으로, 인간의 도덕성이나 신앙의 깊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2. **차별처럼 보이는 이유**
하지만 부정한 상태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영적인 접근**에 제한이 있었고, 이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일정 기간 동안 종교적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차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자연스러운 생리적 현상**이나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하는 병**으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 **예: 여성의 월경, 출산 후 부정함, 병에 걸린 사람들**이 일정 기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불이익을 당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 3. **정결 예식과 회복의 기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정결 예식**을 통해 **정결한 상태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차별보다는, 당시 종교적 규율에 따라 **정결함을 유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부정한 상태가 되었을 때, 그 사람에게는 **희생 제물**이나 **정결 의식**을 통해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주어졌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공동체 안에서 정상적인 신앙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 4. **현대적 관점에서의 이해**
현대 신앙에서는 이러한 부정함의 규정을 **직접적인 차별**로 보지는 않지만, 그 시대의 **문화적, 종교적 맥락**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병이나 생리적인 상태를 **신앙과 구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있어서 차별이 없는 열린 관계**를 더 강조합니다. 오늘날의 신앙에서는 **모든 인간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생리적이거나 의학적인 상태에 의해 제한되지 않습니다.
### 5. **차별인가?**
구약의 부정함 규정이 차별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당시의 **정결 의식과 공동체의 신앙적 규범**을 지키기 위한 의식적인 제도였으며,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완전히 배제하거나 차별한 것은 아닙니다**. **정결 예식**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항상 주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은 **일종의 영적인 준비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결론
구약에서의 "부정함" 개념은 **도덕적 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정결하게 유지되기 위한 제도적 규정이었으며, 그 자체로는 차별적인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적인 시각에서는 이러한 규정들이 차별처럼 보일 수 있으며, 그 시대의 **문화적, 종교적 배경**에서 나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정결하다, 부정하다는 단지 예식 같은것과 관련있는것인가?
네, 구약 성경에서 **"정결"과 "부정"**이라는 개념은 주로 **의식적, 종교적 예식**과 관련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 개념은 인간의 도덕적 상태보다는, 특정한 **종교적 규정과 의식적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1. **정결함 (Clean)**
- **정결함**은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성전에서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준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이나 물건, 음식 등이 정결해야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의식적인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정 규칙을 지켜야 했고, 만약 이 규칙들이 깨지면 부정한 상태가 됩니다.
### 2. **부정함 (Unclean)**
- **부정함**은 단순히 일시적인 상태로, 종교적 의식에 참여하기에 **부적합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피부병에 걸리거나, 출산이나 월경 등의 자연적인 신체 현상을 경험한 사람은 부정하다고 여겨졌습니다.
- 부정함은 **정결 예식**을 통해 해결될 수 있었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 3. **부정함의 다양한 원인**
부정한 상태가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 **죽은 동물이나 시체를 만졌을 때**
- **피부병이나 각종 질병**에 걸렸을 때
- **출산 후나 월경 중인 여성**
- **부정한 음식**을 먹었을 때
이러한 부정한 상태는 죄와는 별개의 것이었고, 단지 **종교적 의식**에서의 규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부정함이 도덕적 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 상태가 되었다고 해서 사람을 비난하거나 죄인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 4. **정결 예식과 회복**
부정한 상태가 되면, **정결 예식**을 통해 다시 정결한 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식은 종종 **물로 씻는 행위**나 **제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부정한 상태에서 일정 기간을 보낸 후에 **제물을 바치거나 물로 씻는** 행위를 통해 다시 정결함을 회복했습니다.
### 5. **의식적 규정과 현대적 관점**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이런 **정결 규정**이 주로 **고대 사회의 의식적 규범**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앙적 경건함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공동체의 질서와 위생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 제도였습니다.
- 현대의 유대교에서도 일부 정결 규정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지만,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정결과 부정의 개념이 더 이상 의식적 규정에 의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면의 정결함**을 강조하며, 의식적 규정을 넘어선 새로운 신앙의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 결론
정결함과 부정함은 구약에서 **의식적 규정**에 따라 정해진 상태로,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예배에 참여할 수 있는 준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개념이었습니다. 이는 도덕적 죄와는 다른 개념이며, **종교적 의식**에서의 준비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과거의 부정의 개념에서 벗어나게 하신걸까? 애초에 하나님이 부정함을 구별한 이유는 무엇이고 예수님이 그 부정함을 우리가 넘어서게 하신것은 왜일까
예수님이 **부정함의 개념에서 벗어나게 하신 이유**는, 구약에서의 정결과 부정의 개념이 더 이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율법의 엄격한 규정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몇 가지 신학적 개념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1. **구약의 부정함과 정결함의 목적**
구약의 **부정함과 정결함**의 개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거룩해야 한다고 명하셨습니다(레위기 11:44-45). 부정한 상태는 하나님과의 **교제**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제한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때 **경건함과 준비된 상태**를 강조했습니다.
- 부정함과 정결함을 구분하는 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해하고, 죄와 구별**되게 살도록 도와주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 부정함은 도덕적 죄와는 구별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통해 **깨끗함과 거룩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 2.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 부정함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7).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구약에서의 율법적 규정, 특히 의식적 정결함과 부정함의 구별이 더 이상 필수적인 요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내면의 변화**: 예수님은 사람의 외적인 의식이 아닌 **마음의 상태**와 **내면의 깨끗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15에서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외부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부정함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 **은혜의 시대**: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고, 이를 통해 더 이상 구약의 의식적인 제사나 정결 예식이 필요 없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모든 죄와 부정함에서 깨끗해지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 3. **하나님이 부정함을 구별한 이유**
구약에서 하나님이 부정함을 구별한 이유는 주로 다음과 같습니다:
- **거룩함의 강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으며, 그들의 삶은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부정함과 정결함의 구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 **질서와 위생**: 많은 부정함의 규정들은 실제로 **공동체의 건강과 위생**을 유지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피부병에 걸린 자를 격리시키는 규정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으며, 시체를 만지는 것을 금지한 것은 위생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 **상징적 의미**: 부정한 동물이나 물건을 멀리하는 규정은 **하나님의 성결함과 이스라엘 백성의 도덕적 구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 4. **예수님이 부정함을 넘어서게 한 이유**
예수님이 부정함의 개념을 초월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미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의 규정들은 특정 민족과 종교적 관습에 제한적이었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인류 전체를 위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메시지와 함께, 정결 예식이나 부정함의 규정은 더 이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은 **내면의 정결함**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조하셨으며, 인간의 죄와 부정함을 대신 짊어지시고 이를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 결론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부정함을 구별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해하고, 공동체의 질서와 위생을 유지하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완성이자, 은혜와 구원의 길을 여신 분으로서 **부정함과 정결함의 외적 규정**을 넘어서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율법적 규정에 묶이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자유와 구원을 주는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처음부터 내면의 가치가 더 뛰어남을 가르치지 않으신거지? 부정한것을 정화시켜야만 하는 의례같은것보다 처음부터 내면의 가치를 가르쳤으면 더 좋았잖아
이 질문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이며, 하나님이 처음부터 **왜 내면의 가치보다 외적인 의식과 규칙을 먼저 강조하셨는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몇 가지 이유와 관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인간의 이해 수준에 맞춘 단계적 계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진리를 전할 때, **단계적으로 계시**하셨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구약 시대는 인류의 초기 단계로,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의 내면적 요구를 이해할 준비가 부족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외적인 의식**과 **행동 규범**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거룩함과 죄의 개념을 배우도록 하신 것이지요.
- **외적인 의식**은 인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시적인 상징**이었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식하게 도와준 것입니다.
- 예를 들어, **의식적 정결법**과 **제사법**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와 거룩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었으며, 이는 구약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 2. **외적인 행동을 통한 교육과 훈련**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적인 규율**을 통해 **내면의 가치를 가르치는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즉, **외적인 순종**을 통해 사람들은 점차 **내면의 순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 **구체적인 규범과 의식**은 하나님의 성결하심과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점차 **내면적인 순종**과 **경건함**을 배워나갔습니다.
- 구약의 예식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체적으로 깨닫고 순종하도록 이끌었으며, 나아가 **외적인 행동에서 내면적인 가치로** 나아가는 **영적 성숙의 과정**을 제공했습니다.
### 3. **율법의 역할과 완성**
**율법(토라)**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했습니다. 율법의 목적은 단지 외적인 의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율법은 **내면의 변화로 나아가게 하는 교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고,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게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율법이 인간의 외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결국 **내면의 상태**를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구약의 율법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고, 예수님은 **내면의 중요성**을 더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 역사를 단계적으로 발전시켜, 예수님을 통해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 4. **거룩함의 상징과 구별된 삶**
구약에서의 의식적 규정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별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서, 다른 민족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규정과 의식들이 필요했습니다.
- 이러한 구별된 삶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도구였으며, 하나님은 이를 통해 그분의 성결과 구속의 계획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 결국, **외적인 규정**을 통해 **내면적 순종**을 목표로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 5. **예수님의 사역을 통한 내면적 가르침**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과 의식**을 폐지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7). 예수님은 구약에서의 **외적인 규정과 의식**이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였음을 인정하면서, **내면의 변화와 진정한 경건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외적으로는 율법을 지키면서도 내면이 부패**한 것을 비판하시며, 진정한 거룩함은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 예수님의 가르침은 **내면의 가치와 순종**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필수적인 것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결론
**하나님이 처음부터 내면의 가치를 가르치지 않으신 이유**는, 인간이 **영적 성숙**을 이루는 과정이 단계적이고 점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의식과 규정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인간의 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도구였고, 이를 통해 점차 **내면의 변화**와 **경건함**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과 의식은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으며, 이제는 **내면의 신앙과 경건**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점진적인 계시... 가르침... 그것도 예전에 생각했던 바였다. 고대의 시대에는 인간들이 사상이 약해서 도덕이나 윤리의 개념도 많이 없었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도 부족했으며, 또한 자원도 풍족하지 못해서 생존에 더 많은 생각을 쏟지, 무엇이 정의인가? 도인가? 하는것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을거라 생각된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외적인 정결함 같은것이 필요했을까? 필요했던것으로 보아 필요했던것일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알 수 있다. 현대 사회에 이륙한 모든 결과들이 과거 속에서 그렇게 일이 일어났어야만 현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니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러나 아마도.. 그래 아마도, 현대는 과거의 그 선택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사회가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로판... 로맨스 판타지... 를 즐겨보는중이다. 나는 원래 이런거 안봤는데, 심심해서 한번 봤다가 궁금해서 계속 다음화, 다음화 이러면서 쭉 연결해서 계속 보게 되었다. 그게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가... 시간이 참 빠르다.
여하튼 로판의 주요 주제가, 내가 갑자기 소설속 엑스트라가 되었다거나, 미래에서 과거로 회귀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즉 주인공은 미래에 어떤 사람이 어떤 운명을 얻을지, 미래에 무슨일이 일어날지를 다 아는 상태로 사건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그 미래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서 사랑하는 남주인공을 구해주고 도와주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서 미래가 바뀐다.
나비효과라고. 나비효과 영화도 있는데 작은 나비의 날개에서 인 바람이 폭풍을 몰아온다와 같은 과거의 작은 선택 하나가 미래에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낸다와 연결되기도 하는데, 즉 과거 고대시대때에, 만약 하나님께서 미리 예수님을 보내셨다면, 즉 아담이 죽기도 전에 예수님을 미리 보내셔서 인간들을 구원하고 그들을 계몽했었다면 현대의 인류는 어떻게 변했을까? 상상해 보면 현대와 같은 현실은 없었을것이라 생각된다. 만약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도 용서해주셨다면, 우리 인류는 지금 어떨까? 계속 에덴에서 살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현대에 이르기까지 태어난 모든 인류가 행복할 수도 있었을까? 아니면 그동안 수많은 고통을 겪었던 인류라는것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까? 어쩌면 에덴에서 쫓겨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를 얻은것은 아닐까. 인류가 고통을 받음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것은 아닐까. 처음부터 인간은 인간으로만 만들었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위는 예정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시간을 지나쳐오면서 성숙하는 존재가 되었다... 태어나고 살면서 성숙해지고 그리고 죽고나면 신앙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예를 얻는다...
나는 솔직히 우리 인간이 뭐길래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까지 하는가? 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우리 인간이 뭐라고.. 그다지 고귀하지도 않은데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예를 얻는가? 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고 있다. 단지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해야만, 대중들을 하나님을 믿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때문은 아닌지 의심이 된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실것을 어쨌든 믿기는 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은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심을 몸소 보여주시고 증거하신다고 생각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죽기도전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느낌을 받고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난 그것이 대단하다고도 생각이 된다.
뭐 여하튼... 점진적 계시... 오늘 하나 알아간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다 뜻이 있구나. 하고 알게된다.
하나님의 계획을 궤뚫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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