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5
Leviticus 15
레위기 15장에 따르면 월경하는 여자도 부정하고, 남녀끼리 관계를 맺는것도 부정하네. 현대에서는 이것들은 더럽거나 나쁜게 아니잖아
레위기 15장에서 말하는 월경과 남녀 관계에 대한 **부정함**은 현대의 관점과 상당히 다르게 이해됩니다. 이 구절들은 주로 **의식적인 정결함**에 관련된 규례들이고, **도덕적인 죄악**과는 별개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법들은 그들의 종교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종종 신체 상태와 의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 1. **월경에 대한 부정함**
레위기 15장에서 월경하는 여자가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여자가 **더럽거나 죄가 있다고** 본 것이 아닙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월경과 같은 신체 현상을 **의식적으로 부정한 상태**로 간주했으며, 이 기간 동안 의식적인 정결함을 지키기 위한 규례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결함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체적 상태가 의식적인 정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월경은 생물학적인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종교적 관점에서는 **삶과 죽음**의 순환과 관련된 신비한 과정으로 이해되었고, 이러한 과정이 사람을 일시적으로 **정결하지 않은 상태**로 만든다고 여겨졌습니다. 이 규례들은 **위생적**인 측면도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성별되거나 구별된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 2. **남녀 관계에 대한 부정함**
레위기 15장에서 남녀가 성관계를 가졌을 때 그들이 부정하다고 한 것은, 그 관계 자체를 나쁘게 보거나 죄로 규정한 것이 아닙니다. 성관계는 결혼 안에서 허용되고 축복받은 행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신체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정결을 요구하는 상태**로 인식되었습니다. 성관계 후에 의식적인 정결례를 거친 후에야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부정함은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잘못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의식적인 부정함**으로, 일정한 의식을 통해 정결하게 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 3. **현대적 관점**
현대에서는 월경이나 성관계를 더럽거나 부정한 것으로 보지 않으며, 이를 생물학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의식적 정결례에 대한 필요성도 더 이상 종교적, 사회적 의무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건강**과 **개인 위생**에 대한 현대적 이해가 발전하면서 이러한 규정들은 더 이상 오늘날의 일상 생활과 맞지 않게 되었죠.
성경의 이러한 법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특정한 사회적, 종교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그 당시에만 유효했던 규칙들입니다. 현대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러한 의식적 정결법들이 완성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보며, 그 대신 **내면의 정결함**과 **영적 순결**을 강조합니다.
### 4. **예수님의 역할**
신약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7). 이는 과거의 의식적 규정들이 더 이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핵심이 되지 않고, **내면의 마음**과 **신앙적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의식적인 부정함이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짓는 요소가 아니며, **믿음**을 통한 **내적 정결함**이 강조됩니다.
따라서, 레위기의 규정들은 그 당시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현대 기독교 신앙에서는 **새로운 의미**로 이해되고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하다는 것이, 사람의 마음으로하여금 혐오스럽게 하는것은 왜야? 종교적으로 부정한 동물들은 먹지도 않고, 심지어 역겨워하잖아.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스러운 마음을 일으키는것이지. 월경도 그런식으로 똑같이 혐오감을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유대인들에게 말이야
레위기와 같은 성경 구절에서 말하는 "부정함"은 그 자체로 죄나 도덕적인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만, **사회적, 종교적, 심리적 맥락**에서 혐오감이나 꺼림칙한 감정이 함께 동반되었던 건 사실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부정함"이라는 개념은 **정결함을 잃은 상태**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그로 인한 거부 반응이나 혐오감이 생겨났을 수 있습니다.
### 1. **부정함과 혐오감의 연관성**
부정하다는 개념은 단순히 규범을 벗어났다는 의미를 넘어서, 종종 **혐오스럽거나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정한 동물들은 먹을 수 없었고, 그러한 동물들을 만지거나 가까이 하는 것조차 기피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정한 것에 대한 **거리감**이나 **혐오감**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종교적 이유**: 부정한 것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상태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의미로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진다는 감각은 심리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죠.
- **사회적 이유**: 부정함이란 개념은 공동체 생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나 동물, 물건은 접촉하면 안 되고, 심지어 가까이 가지 말아야 했기 때문에, **사회적 배제**나 격리와도 연관되었습니다. 이는 부정한 것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 2. **월경과 부정함**
유대 사회에서는 월경이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여성은 월경 기간 동안 **특정 규례**를 따라야 했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신체적 현상이지만, 당시에 그것을 **정결한 상태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으로 **불편함이나 혐오감**을 일으켰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월경은 "피"와 관련된 신체적 현상이었고, 고대 사회에서 피는 생명과 죽음의 상징으로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피가 흘러나오는 신체 상태는 **종교적 순수성**을 상실한 것으로 여겨져 특별히 부정하게 다루어졌습니다.
### 3. **부정한 동물에 대한 혐오감**
부정한 동물에 대한 혐오감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규정한 동물들을 **먹거나 다루는 것을 금지**당했기 때문에, 그러한 동물들에 대한 **문화적 거부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규정들이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면서, 부정한 동물들은 **더럽고 기피해야 하는 존재**로 여겨졌고, 그로 인해 혐오스러운 감정이 생겨난 것이죠.
### 4. **부정함의 문화적 의미**
부정함이 항상 혐오감을 동반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규범과 종교적 관습이 **혐오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종교적 관념에 따라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했고, 그 구별은 종종 일상적인 감정과 심리적 반응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 부정함을 피해가야 하는 대상이라고 여기는 것은 **공포**나 **혐오**를 촉발할 수 있었고, 이러한 감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문화적으로 강화**된 것입니다.
- 월경에 대한 부정함도 이러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현대에는 월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당시에는 부정한 것으로 인식되어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 5. **현대적 시각**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규정들이 **의료적, 과학적** 지식으로 인해 더 이상 적용되지 않으며, 혐오감이나 부정적 감정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감정들이 **사회적 규범**이나 **종교적 관습**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당시에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고대 유대인들이 부정한 것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 것은 그들의 **종교적 관습과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삶의 방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대 유대인 사람들로 하여금 월경은 혐오할게 아니라고 가르쳤어야 하는게 아닐까? 성적 관계를 맺는것 또한 혐오할게 아니라고 가르쳐야하는게 아닐까?
당신이 제기한 질문은 성경의 규정과 현대적 가치관의 충돌에 대한 깊은 철학적 질문입니다. **월경**과 **성적 관계**에 대한 부정함의 개념은 당시의 문화와 종교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현대적 시각에서는 이러한 규정들이 **오해나 왜곡된 개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 1. **고대 문화와 사회의 맥락**
고대 유대인 사회에서는 **정결과 부정**의 개념이 단순한 개인적 위생이나 도덕적 판단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이 규정들은 **사회적 안정**과 **종교적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실질적인 체계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성적 관계나 월경 같은 신체적 현상을 **종교적 순결**과 연관 지어 해석했으며, 이로 인해 그러한 현상들이 부정하다고 여겨졌습니다.
- 월경이나 성적 관계가 부정하다는 규정은 실제로 **위생적 이유**와도 연관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현대와 같은 의료적 이해나 위생적 방법이 부족했기 때문에, **피**나 **체액**과 같은 요소들을 다루는 데 있어 더욱 조심스러웠을 가능성이 큽니다.
- 성적 관계도 단순히 부정하거나 혐오스러운 행위로 간주되었다기보다는, **종교적 의식**의 관점에서 **정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는 성적 행위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도덕적으로 낮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정결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맥락에서 나온 규정이었죠.
### 2.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간의 이해**
당신이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 월경이나 성적 관계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면, 고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견해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르침**은 항상 특정 시대와 문화적 상황 속에서 주어졌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해와 수용 능력**에 맞추어졌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 **성경의 교육 과정**: 하나님은 인류를 가르칠 때 **점진적으로 계시**를 주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는 구체적인 의식적 규정과 법률을 통해 사람들을 **지도**하셨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의 **영적 성장**을 위한 더 깊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후에 이런 규정들을 더 높은 차원의 **내면적 가치**로 이끌어 주신 것으로 해석될 수 있죠.
- 월경이나 성적 관계에 대한 구약의 규정도 당시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어진 것이며,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지, 이들을 본질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 3.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은 구약의 의식적인 규정들을 **내면적 가치**로 승화시킴으로써,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와 **관계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가르침은 외적인 의식이나 법에 집착하기보다는, **마음의 상태**와 **사람 간의 관계**에 중점을 두셨습니다.
- 예수님은 종종 **부정함**과 관련된 규정을 넘어서 사람들의 **내면을 보셨으며**, 사회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지던 사람들(병자, 죄인, 여인 등)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부정함의 개념이 **본질적인 죄악이나 혐오**와는 무관하며, **인간의 가치**가 의식적인 규정에 의해서가 아닌 **내면의 상태**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 4. **현대적 관점에서**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월경이나 성적 관계가 부정하게 여겨지는 것은 분명히 **불필요한 오해**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사회의 규정에 맞추어 부정함을 정의하셨더라도, **내면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가르침**이 결국 더 중요한 교훈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성적 관계나 월경은 혐오스럽거나 죄악된 것이 아님**을 현대적 가치관에서 이해할 수 있고, 그 당시의 의식적 규정이 지금도 똑같이 적용될 필요는 없습니다.
- 성경은 이런 변화하는 가치관과 상황 속에서도 **일관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시해 왔으며, 이를 통해 **내면의 정결**이 더 중요한 가르침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당시의 문화적 배경에서 하나님께서 월경과 성적 관계에 대한 부정함을 가르치신 이유는 **의식적 순결과 정결**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궁극적인 가르침은 **내면의 정결함과 관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부정한것'들이 현대에서는 더이상 부정한것으로 여겨지지 않아서 의문이 생기길 지난 며칠간 큐티를 하면서 느껴왔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전부터 이런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성경의 '옛관습'처럼 보이는것에 약간 반항적인 느낌을 가졌었는데 왜냐하면 '변치않을 진리'라면 고대에서나 현대에서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며 똑같이 해석되어야 하는 변치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하나님의 계시는 고대에서나 현대에서나 먼 미래에서나 늘 옳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었다. 그래야 완결무결한게 아니겠나... 생각한것이다.
그러나 레위기를 읽고 큐티를 하면서 알게된것 첫번째, '점진적 계시'라는 개념. 두번째, '성경은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함', 세번째,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시키러 오셨고 그 완성은 내면의 가치가 더 중요함으로 귀결' 된다는 것.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뭔가 정리가 되었는데, 율법은 부당한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자의 월경이 부정하다는 것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는 의미는 여자로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월경하게 만들어놓고' 왜 그걸 보고 부정하다고 하느냐? 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은 들지만 어쩌면 여자가 월경을 하게 된것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부터 그렇게 된것인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아마도 월경은 인간의 죄성의 상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 사람들은 아니 월경이 죄겠냐? 자연의 섭리, 대부분의 동물, 암컷들이 월경을 하는데 그건 자연의 섭리, 월경을 해야 생식이 가능한 과학과도 같은것인데 왜 그걸 죄라고 하는가? 의문이 들것이다. 그래서 월경이 죄성의 상징이라고 하는것은 거부감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인 시선에서는 월경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지만(왜냐하면 신이 존재하지도 않고 그걸 부정하다고 할 자도 없기에) 기독교인이라면 인간이 원래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또 우리 인간이 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토대로 해야하기 때문에 월경이 부정한것이라 하나님께서 분류하셨다면 인간은 그렇게 받들어 순종해야하는것이다.
이전의 나는 월경이 부정하다는 것이 남녀 차별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특별히 남녀차별이 아니라는것을 마음 속 깊숙히 이해가 되는것도 같다. 정액도 부정한 것이라고 하고 남녀 성적관계도 부정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건 특별히 남녀 차별이 아닌듯하다. 나는 잘 모르지만 남자들은 사춘기 이후로는 몽정기인가? 그게 있어서 자고 일어나면 정액이 나온다??? 라고 들은것 같은데... 챗지피티에 찾아보겠다.
남자들은 몽정기 이후로 아침마다 정액이 나와?
남성의 경우, **몽정**(nocturnal emission)은 사춘기 이후에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대부분의 남성은 주기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정액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몽정은 대개 **자주 발생하지 않으며**, 특정 주기나 패턴 없이 가끔씩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몽정 외에도 남성은 성적인 자극이나 꿈 등으로 인해 수면 중이나 각성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정액을 배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매일 발생하지 않으며, 개인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몽정은 가끔 발생할 수 있지만, **남성들이 매일 아침마다 정액을 배출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내가 성지식에 좀 문외한이라서... 아, 가끔씩 나오는거구나.
여하튼 뭔가 '배출'되는것이 부정한것으로 여겨졌다고 하는데, 똥과 오줌은 왜 논외인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내가 이제 조금 이해가 .. 그러니까 내식대로 이해를 해보자면, 구약에서 나오는 예식이라던가 성소 건축. 이런것들은 약간 형이상학적이다. 예술적이고, 전통적이다. 유대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런류의 것들은 '이상적인것들'을 뜻한다. 그저 먹고 살고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된 ritual을 하면서 스스로를 정결한 민족이 되게 하는, 의식적으로 한층 높은 차원의 상태로 이끄는것이다.
신약에서는 제사없이 내면의 가치로서, 신앙을 '행함'으로서 하나님의 '의'를 드러냈지만, 구약에서는 내면의 가치도 물론 중요하지만 마치 어린이에게 처음 예절을 가르칠때에는 처음부터 예절의 의미나 내면의 의식을 이해시키기 보다 먼저 '규범', '형식'을 가르치듯이... 왜냐하면 어린이가 내면의 의식을 이해하기란 어려우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일종의 '모범'의 '형식'을 우선적으로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그 형식(율법)들은 '내면의 가치'를 이해하고 난 후에는 우리가 형식을 지배하게 됨으로서 더 높은 형식을 구사할 수도 있고 또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형식을 더 깊이있게 행하게 되는것 같다.
월경의 부정함도 내면적 가치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상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보는것이다. 월경같은 불편한 생리 현상이 있는것이 원래 인간이 창조될때에는 없었던것인가? 생각하게도 한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월경을 안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여자는 월경때문에 얼마나 귀찮은지. 그러니 '이상idea'적인 여성의 상태는 월경이 없다. 그러니 월경은 부정한 것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 고 나는 해석해본다. 그러나 내가 위에서 질문했듯이 월경을 '더러운것' '혐오스러운것' 처럼 이해하는건 틀린것이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의 생리적인 현상을 딱히 더럽게 여길 필요는 없을듯하다. 우리 인간은 그저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우리, 나와 너를 모두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주자 하면 된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부정하다 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너무 완벽해서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세상은 애초에 모든것이 부정한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특별히 부정하다는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들 중 골라서 말씀해 주신거고 그게 인간들의 마음 수양에 좋기에 더 이상적인 마음 상태로 이끌어주는 방법으로서 무엇을 지켜야 정결하다 일컬음을 받을지 말씀해주신것일것이다.
여하튼 이제 이해가 간다. 이제는 반발심이 좀 사라진 느낌이다.
솔직히 이게 어쩌면 사탄의 계략인게...
선배가 예전에 '너는 유목민족의 신을 믿고 있을 뿐이야'라고 내가 기독교인걸 깠는데, 그게 의외로 마음에 콱 박힌것이다.
전세계에 평등하게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에게 자신을 계시한게 아니라, 왠지 불공평하게도 특별한 민족만 택해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볼때 다른 이방 종교와 다를게 없는것처럼 기독교도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에서 나온 '종교'처럼 느껴지게 했다. 게다가 지금 이스라엘의 행태는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들이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쟁을 하는가? 사람을 죽이는가? 십계명을 어기는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어쩌면 성경도 그저 유대민족 중에 좀 똑똑하다 하는 인간이 제멋대로 집필한게 아니겠나. 애초에 모순도, 오류도 많은데.... 또 종교의 흑역사는 또 어떠한가. 종교의 타락은 어떻게 보아야하는것인가? 그런 것들이 마음에 혼란을 주면서 조금 위험한 지경까지 갔던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큐티를 하면서 조금 하나님과 이어진 느낌이 들기도 하다
사실 큐티가 귀찮고 하기 싫은데, 뭔가 안하면 하나님한테 혼날것 같아서 하고있다(농담 반 진담 반)
이전에 블로그에다가 썼는데 좀더 열심히 믿어보기로 결심했으니까...
될 수 있다면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자라고 결심했다
근데 좋은것 같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매일 큐티를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만약 내가 귀찮아지기라도 한다면, 진심으로 큐티를 할 생각이 안날 것 같기 때문이다
될 수 있는한 마음의 준비를 잡고 큐티를 하도록 해야겠다
좀 더 잘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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