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기독교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일 것이다라는게 내 생각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양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의 내면을 보신다고 했다. 사람의 외양이란 외모나, 부유함, 명예 같은것으로 하나님은 그 사람의 그런것들을 보지 않고 얼마나 마음이 선한지,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하는지를 본다고 한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도 원래는 목수가 직업이었고 베드로는 어부였던 것이다.
거지이든 왕이든, 그의 내면만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내면으로 보신다면, 우리 사람들도 이를 따라서 사람들의 내면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 같다.
다만, 세속적인 우리 인간들은 사람의 외양을 보고 내면을 판단하기 십상이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학문적 성취가 큰 사람들을 보고, 성실하고 마음이 열려있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준수해서 공부를 잘 한 것이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러나 공부를 잘한다고 마음이 착한 사람인 사람은 그다지 없는것 같다.
명예가 큰 사람도 그렇다. 국회의원들만 봐도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반대로 가난한 농부 중에 마음씨가 따뜻하고 좋은 사람도 봤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인데 몇억씩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하는 사람도 보았다.
물론 많이 배운 사람들이 더 마음에 여유가 있고, 또 세련됬으며 멋진 성격을 가진 사람이 많은것도 현실이다. 가난해서 날카롭고 히스테릭한 사람들이 더 많은 것도 현실이다.
우리 사람들은 내면을 꿰뚫어볼 능력이 안되므로 사람들의 행실을 아주 자세히 봐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이 귀한 사람인지 천한 사람인지 보려면, 그사람의 배경보다는 그사람의 마음을 봐야할 것인데 마음은 보통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말과 행동만으로도 그 사람의 내면을 알기는 쉽지 않다. 충분히 나쁜 사람도 순수한 말 순수한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론은 우리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일것이다. 귀한지 천한지 아예 판단을 하지 않는것이다.
차라리, 모든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다만 내 행실에만 집중해서 내게 다가온 악인에게도 사랑을 베풀고, 나에게 도움을 준 자에게도 사랑을 똑같이 베푸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남의 흠은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보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사람의 귀함과 천함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업에 귀천은 없다. 사람의 귀천은 근데 같은 인간으로서는 알아내기 힘들다. 그러므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선한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로 사람들을 존경하면 좋겠다. 지금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많이 베푸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사람들이 구제를 그다지 중요시하게 여기지 않는 이 시대에 구제를 하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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