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그냥 모태신앙인인 나로서 내 신앙에 한번 생각해 보는 글이다.
모태신앙은 말 그대로 모태, 엄마 뱃속에 있을때부터 교회에 다녔다는 뜻이다.
부모님이 기독교라서 모태에 있을때부터 태어나서 어릴때 교회를 다녔음을 뜻한다.
모태신앙인은 그대로 쭉 어른이 되고서 지금까지도 교회를 다닐 수도 있고, 중간에 신앙을 잃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지금까지도 쭉 교회 설교말씀을 듣고 있다. 다만 그다지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라서 교회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고 집에서 유투브로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래도 예배를 드리면 마음속에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어릴때부터 교회에서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세뇌되어서 인지도 모른다.
세뇌라는 것은 한편 좀 나쁜 말인것 같기도 하다. 그냥 교육을 받았다고 쓰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냥 쉽게 세뇌라고 써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세뇌는 잘못된 믿음을 머릿속에 심어준다는 의미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쓰는 말인것 같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세뇌당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는게 맞는것 같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올바른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니까. 초등학교때 배운 수학 교육을 교육받았다고 하지 세뇌받았다고 하지 않듯이.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세뇌' 당했다라는 말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세뇌를 당한게 맞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에 흔들리기도 한다. 나도 또한 나 자신을 의심해보곤 했다. 지금의 내 믿음이 과연 어릴때부터 교회에서 믿음을 주입당해서 있는게 아닐까. 믿음이라는게 무엇일까. 나는 단지 많이 알고 있는것에 지나지 않을까. '알고있다는 것'과 '믿음'은 다른것 같은데 말이다.
단지 알고있는것이라는게 마치 수학 공식을 알고 있듯이 교회의 교리나 성경 내용을 알고있는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수학 공식은 수학적 진리와도 같다. 수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수학 공식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한다. 수학 공식에 오류가 없다면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을 진리이다. 교회의 교리나 성경을 그처럼 여긴다는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홍해가 갈라졌다느니, 물 위를 걸었다느니 하는 말은 의심이 가긴 하지만, 대부분은 거의 그냥 믿는다. 이것이 어릴때 부터, 말하기 전부터 교회에서, 그리고 부모님께 배워서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내가 믿을 수 있게된걸까. 그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모태신앙인으로서 나는 다행스럽기도 하고 다행스럽지 않다고 여기기도 한다.
다른 모태신앙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왜 하나님을 믿느냐' 묻는 말에는 '그냥 어릴때부터 교회 다녔으니까 믿는다' 라는 말들이 많았던것 같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모태신앙인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한데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라는 말도 하는 것 같다. 교회에 안나오는 모태신앙인들은 보통 부모님에게서 독립하면서 더이상 교회에 안나가게 되었다는것 같기도 하다. 나또한 어릴때는 부모님이 내가 교회에 안나가면 혼을 내시곤 했다. 잠시 내 근황에 대해 말하자면, 위에서도 말했지만 교회는 유투브로만 예배를 드리고 있다. 독립한건 아니지만 그렇게만 예배드려도 우리 부모님은 허용해주시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느냐 묻는다면 '그렇다'라고도 할 수 있는 편인것 같다.
설교 중 목사님이 언급한적이 있다. 모태신앙인들은 어릴때부터 교회에 다녀서 그다지 뜨겁지가 않다고. 오히려 나중에 교회에 믿음을 갖게된 사람들이 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 모태신앙인들은 분명 더 강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모양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자료가 없어서 뭐라 쓰긴 그렇지만, 설교 말씀 상에서는 그렇게 들렸다. '뜨거운 믿음'이 있느냐.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런건 없는 것 같다. 그대신 얼음처럼 '차가운 믿음'은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수학 공식처럼 성경의 말씀들을 기억하고 마치 실제 그대로인듯 받아들이는 믿음. 너무 어릴때부터 들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성경. 그리고 기도하는 법이라던가 설교를 듣는 자세 등등. 거기다 더 놀라운것은 무엇이냐면, 뭔가 성령이 임재했다는 느낌 마저 차가운 느낌이라는 것이다. 나는 어릴때 성령 체험을 한 사람이다. 어릴때 기도하다가 나도 모르는 무언가가 몸 안에서 흘러넘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잠자기 전 환상 비슷한것으로 나라고 생각되는 컵이 장미빛 바닥위에 놓여있고 그 컵으로 하나님이 부어주신다고 생각되는 깨끗한 물이 흘러내려 잔에 따라지고 그것이 흘러넘쳐 넓은 바닥으로 물이 퍼져나가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설교 말씀으로 '내 잔이 흘러 넘치나이다'라는 말씀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신비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신비체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차가운 믿음'을 갖고 있는것 같다. 교회에서 보이는 다른 사람처럼 뜨겁게 찬양하지도, 뜨겁게 기도하지도, 뜨겁게 예배드리지도 않는다. 그것이 모태신앙인으로서 내가 나를 의심하는 이유다. 내가 모태신앙이 아니었다면 과연 지금 내가 교회를 다니고 있을까. 하나님을 믿고 있었을까. 내가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안단 말인가. 그리고 누가 과연 내 믿음을 증거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어느 누구도 내 믿음에 대해서 말해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 뿐이다.
누군가 스스로 '난 믿음이 좋아'라고 하는걸 들으면 겸손하지 못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지 보여지는 행동만으로 그 사람이 믿음이 좋은지 알 수는 없는것 같다. 교회에 매일 나가고 기부도 하고 기도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믿음이 좋지 않을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 같은 경우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지. 일반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기도 하다. 그들로선 믿음이 좋은것이다. 우리는 세뇌 당했다고 또 말하지만. 정통교회의 사람들은 이단들을 보고 세뇌 당했다고 하고, 세상 사람들은 정통 교회 사람들보고 세뇌당했다고 말한다. 서로 세뇌당했다고 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나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내 믿음이 진짜 믿음일까. 정말 세뇌당한것은 아닐까. 난 그다지 뜨겁지도 않은데 말이다.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헷갈린다. 나는 우유부단한 성격이라서 더더욱 헷갈린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헷갈리는 중이다. 애초에 헷갈려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믿음이 확실하다면 이런 헷갈림이 없을 것이다.
최근 목사님 설교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우리 세상적인 사람이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떠올리는 것은 성령이 불어넣은게 아니면 떠올리는게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솔직히 조금 자의적이지 않았나 싶긴 한데 여하튼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는것은 모두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신거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믿음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거의 수시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불안이 많은 사람이라서 oh my god 을 남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please god. 도 많이 한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도 '신령님' 거리면서 신을 찾는걸 생각하면 역시 자신이 믿는 신이 떠오르는게 굳이 하나님이 불어넣어서 인것 같지는 않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무엇일까. '차가운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정말 궁금한 것이다.
신앙적으로 더 좋아지려면 '믿음'이 먼저여야 하는게 아닐까. 아니면 먼저 신앙적인 생활에 내가 열심을 다하면 그제서야 '믿음'이 좋아지는것일까. 하기 싫어도 교회 자원봉사도 하고 성경도 귀찮아도 읽고, 시간을 내어 기도를 하고 하면 믿음이 생기는 것일까. 그러나 믿음은 성령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럼 순서가 반대가 아닐까.
믿음이 좋아져서 내가 '하고싶게' 만들어야 하는게 아닌가. 내 안에서 솟아나도록. 열정을 다하도록. 열정에 대입해보면 쉽다. 열정이 있어서 무언가 하는거지. 무언가를 함으로서 열정이 생기는것은 그저 일을 할때이다. 내가 노력을 쏟은 일이기에 열정이 생기는 경우. '믿음'도 그런것일까. 모태신앙이 아닌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갑자기 믿어지더라' 라는 말들을 하던데 나같은 모태신앙인들은 그런 '갑자기 믿어지더라'라는 순간을 믿기 힘들다. 애매하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있는건지 그냥 알고있는건지. 마음을 속이기란 쉬운 것이니까. 찬송을 부르고 벅차오르는 느낌이 든다고 나는 믿을 수 있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오른다. 마치 연기하는 것과도 같다. 연기는 표정과 행동으로 연기 한다고 하지만 연기하는 사람 마음에서는 연기하는 상황을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진짜 그 캐릭터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벅차오르고 진심으로 슬퍼하고 진심으로 분노하고는 한다. 마음을 속이기란 얼마나 쉬운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이 나를 속여왔는가.
모태신앙은 축복이자 불행이기도 한 것 같다. 세상 모든것들이 축복이자 불행인것 같기도 하지만.. 세상의 것을 , 상황을 환경을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의 것은 축복이 되기도 하고 불행이 되기도 하다. 혹은 불행이 아니라 저주.
모태신앙은 나같은 사람에겐 사실 축복인지도 모른다.
모태신앙을 가졌는데도 이렇게 '차가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것은, 내가 모태신앙이 아니었다면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솔직히 이과라서 진화론도 그럴듯하고 양자역학도 그럴듯하다. 그리고 성경에 따르면 우리 지구의 역사는 1억년이 넘지 못하다는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화석을 발견하고, 태초의 우주에 대해서 연구한다. 성경은 모든것을 담고있는 책이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성경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얼마나 많이 다른가. 얼마나 다양한가. 이단들은 얼마나 많은가. 정통 교회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이런 와중에 하나님을 믿는데 '믿음'은 결정적이다. 교회에서는 '체험'하라고들 한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고 하고 말이다. 그러나 모태신앙이라고 더 많이 체험하는건 아닌것 같다. 더 뛰어나거나 더 축복받은것도 아니다.
아니면 단지 나만 '차가운 믿음'을 가지고 있는것일 수도 있다. 모르는 일이다. 다른 모태신앙인들은 다들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해도 사실은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혹은 내가 아직 때를 못만나서인걸까.
모태신앙인으로서 믿음에 대해서는 길이길이 생각해 볼 일이다.
앞으로도 글을 더 써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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