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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기복신앙에 대한 성경 구절

by one_soul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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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4:2-3 RNKSV‬‬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탐내어도 가지지 못하면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쾌락을 누리는 데에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4 RNKSV‬‬
[4] 간음하는 사람들이여, 세상과 벗함이 하나님과 등지는 일임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처음 교회에 다닐때, 신을 믿어보려는 이유 중 하나가 (아마 대부분의 이유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을 내려주지않을까? 하는 것인 것 같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에게 보호를 받고, 또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을 것이고, 내가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될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어서 일것이다. 이것은 너무 일반화하는것이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터넷에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난 후 원망하는 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일이 더 잘 풀려야 하는게 아닐까.

하나님을 믿으면 좋은 일이 많아져야 하는것이 아닐까

하나님은 왜 나에게 시련을 허용하시는가. 하나님은 나를 보호하지 않으시는걸까?

 

등등과 같은 이야기들을 마주하고는 한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약간 변질되었는데, 그게 토속적으로 내려온 무당들의 신앙과 섞였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무당들은 상을 차려놓고 귀신에게 원하는 바를 빈다. 조상들은 그런식으로 자신의 소망을 빌어왔는데, 그게 기독교에까지 스며들어와 기독교에 다니는 사람이더라도 무당들에게 하듯 똑같이 하나님에게 자신의 욕망, 소원등을 빈다고 한다. 그것을 바로 '기복신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경을 잘 읽어본다면, 이 기복신앙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독교의 세계관에서 빗나간 건지 알 수 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물론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면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지위를 받게 된다. 그러나 , 그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이 세속적인 세상에서의 권력, 부, 명예를 얻는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 지상에서 삶을 사는동안,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히려 예수로 인해 핍박받게 되고, 또 성숙하기 위해 하나님께 단련을 받아야 하고, 자기 자신의 이득보다 하나님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이 적은게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다른 이웃들을 사랑하며, 자신의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한자에게 나누어주고, 나의 욕망,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항상 귀기울이면서 소박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의 하나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바른 자세이다.

 

기복신앙은 우리의 쾌락이나 욕망에 따라서 하나님에게 '이것 달라' '저것 달라' 하는 것인데,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버려야할 1순위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거라면 무엇때문에 믿어야 하는데? 하고 반문하고는 한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답은, 우리 기독교인들은 물질에 대한 욕망, 욕심을 버리는 것이 일이며, 오히려 더 나누고, 오히려 더 다른 사람보다 낮음을 자처하는 사람이라고 답하는 것이다. 불교와 기독교에서 비슷한점이 몇가지 있는데, 불교에서는 '무소유'라는 개념이 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을수록 마음이 자유로워진다는 골지다. 내가 무언가를 가지려 하면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서로 더 얽매이게 되고 자유를 빼앗긴다. 그러니 무소유로 살면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갖겠다. 라고 수행하는 것이 있다. 기독교인도 그 무소유를 실천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정리하자면, 나의 욕망에 따라서 하나님께 구하는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정말 간절히 무언가를 원한다면 그것이 나의 욕망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해서인지를 가려보도록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만약 내가 진정으로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바란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면서 그것을 나에게 주실것이다. 그러나 만약 오로지 세상적인 욕심, 자만심, 우월감 같은 것들을 바라면서 하나님께 무언가를 바라면, 하나님께서는 슬퍼하실것이다. 정말 너무 간절히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실 수 는 있다. 예컨대 명예를 달라고 졸라서 하나님께서 결국 주셨다고 하자. 그러나 그렇게 얻은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의 영혼이 성숙하지 않고, 오히려 그 명예를 얻음으로서 자만하게 되고 죄악에 물든다면 그 명예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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