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9장 1-4절
나는 이 모든 것을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의로운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것, 그들의 사랑과 미움까지도 하나님이 조종하신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무도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일을 알지 못한다. 모두가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깨끗한 사람이나 더러운 사람이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지 않는 사람이나,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죄인보다 나을 것이 없고, 맹세한 사람이라고 해서 맹세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 모두가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잘못된 일 가운데 하나다. 더욱이, 사람들은 마음에 사악과 광증을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희망이 있다. 비록 개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으면 죽은 사자보다 낫다.
전도서 9:1-4 RNKSV
https://bible.com/ko/bible/142/ecc.9.1-4.RNKSV
전도서 9장은 성경의 구약에 속하는 책으로, 지혜 문학 중 하나인 전도서의 일부분입니다. 이 장은 인생의 불확실성과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양한 주제와 의문을 다루면서 바울(밀레토)의 생각과 관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해당 장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인생의 불확실성과 운명의 손**: 이 장은 의인과 지혜로운 사람,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언급하며, 사람의 운명은 사람이 사랑을 받거나 미움을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 **모든 사람은 동일한 운명을 갖는다**: 이 장은 의인과 악인,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모두 일반적으로 동일한 운명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은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서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며, 이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차이와도 연관됩니다.
3. **인생의 진정한 가치**: 인생의 헛된 노력과 노동에 대한 고찰이 이어지며, 이는 모든 인생의 일상적인 모습을 나타내며, 어떤 일을 해도 어차피 운명에 따라 결과가 정해져 있다고 말합니다.
4. **즐거움과 행복의 중요성**: 삶의 즐거움과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인생의 일상적인 모습을 받아들이고 허락해 주었다고 설명합니다.
5. **지혜로운 자의 사고**: 마지막으로,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중요하며, 사람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알아야만 진정한 의미 있는 생활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전도서 9장은 인생의 복잡성, 불확실성, 그리고 지혜로운 삶을 탐구하는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우리의 모든것을 주관하실까? 우리의 기분이나 사랑, 미움도 조종하실까?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감정은? 의지가 아니라 감정은 자유롭게 못하나?
사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은 하나님이 주신것인것 같다. 그리고 그 환경으로 인해 우리 사람은 영향을 받고 다양한 인격의 사람이 되는것 같다. 환경이 하나님이 주신것이라면 가난하고 더러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은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부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더 큰 축복이 있기를.
그나저나 전도서의 내용이 묘하게 불교에서 나온 이야기와도 비슷하다. 나는 이 전도서 구절을 처음 보는것 같은데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라는 구절이 요즘 내가 생각하던 사상이랑 같아서 조금 놀라웠다. 착한이나, 나쁜이나 어쩌면 다 같을지도 모른다고. 용감한 사람 용감하지 않은 사람 다 똑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 전도서에서의 이 구절은 어쩌면 모두가 '죽는 운명'이라는 의미에서 사람은 누구나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라고 말하는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더 들어가서 모든 사람,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사실 거기서 거기인 마음 가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가 싶은것이다.
착한 사람은 다른이들보다 조금 더 선한것에 노력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은 다른이들보다 조금 더 방종하며 사는 사람일 뿐. 예를 들어 이런것이다. 선한 점수가 있는데 선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100점 만점에 거의 3점이나 5점 차이인 것이다. 그들이 다른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즉 착한이나 나쁜이나 하나님 앞에서 별 다를게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착하다고 해서 나쁜이 앞에서 잘난체 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애초에 착한 사람은 다른 나쁜이와 자신을 비교해 잘났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내가 오래 살은 인생도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내 경험상, 나는 착하기도 하고 나빠보기도 해봤는데, 나는 내가 착한일 하는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나쁜짓 하는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착한 마음먹는것과 나쁜 마음을 먹는것은 종이 한장 차이였다. 그러나 같은 마음이라도 다른 부분에서 하늘과 땅차이처럼 어떤것은 되고 어떤것은 안되고 하는게 있긴 하다. 그것은 대개 신념부분에서인데, 예를 들어 미덕이라 생각되는 부분에서 나의 신념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는것을 잊지 말자라는 것인데 사실 거의 강박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착한 편에 속한 사람인것 같았다. 신념은 정말 고치기 힘들다. 그러나 그 신념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저절로 착한 일을 하는 편이고 착한일 이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냥 내가 어릴때부터 쭉 해온 일이기에, 그리고 착한것을 배워서 익숙하기에 착한일 하는게 쉽다. 그러면서 또 따로 나는 가끔 거짓말을 하는데 그게 나쁜줄 알면서도 한다. 그리고 그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내가 착한일 하는것은 쉽기 때문이고 나쁜짓 하는것도 쉽기 때문이다. 그러니 착한사람이나 나쁜사람이나 별 다를바 없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나쁜사람은 역겹긴 하지만... 그래도 잘 생각해보면, 나나 나쁜 사람이나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나쁜 사람에게 크게 욕할 것도 아니며, 그를 경멸할 것도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
불교의 틱낫한 스님이 유명한데 그가 지은 시 중에서 이런 시가 있다고 한다. 시를 지금 못찾겠는데 그의 시 중에는 '나는 살인자요, 도둑이요, 강도다. 동시에 성인이기도 하고, 부유하기도 하고 가난뱅이이기도하다. 과부였으며 왕이기도 하다..' 이런식의 악인이나 성인이나, 부한자나 가난한자나 , 귀한자나 천한자 "모두가 자기자신"이다. 라고 하면서 모두를 포용하는 내용의 시가 있다. 나는 이 시에 감동을 받았었는데, 왜냐하면 이전까지 나는 악한자를 포용해보려는 생각을 잘 하지 않았고 동시에 내 안의 어둠, 그늘진 곳을 거부해왔는데 이 시를 읽고 난 후로 나의 어두운 면을 어느정도 받아들이는 법을 깨닳았었다. 이런 포용의 개념을 전도서의 저자가 '누구나 다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라고 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전도서가 하는 말은 '죽을 운명'이라는 의미에서의 '같은 운명'이라는게 답이라고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거나 성경의 해석은 자유자재이니까 말이다. 성경의 해석은 자유자재로, 나의 신앙에 도움이 되는것이라면 다 허용된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구절의 끝에는 '죽은것' 보다 '살아있는것'이 더 나음을 말하고 있기도 한데, 나는 요즘따라 죽는게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이 안든다. 사실 전도서는 구약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신약에서는 죽음이 나쁜게 아니다. 죽음이 나쁜것이었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로 하여금 순교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도들이 순교하도록 내버려 두셨다.그리고 사도들은 순교를 받아들였다.
죽음 이후에는 천국이 있으리. 나는 그것을 강하게 믿는다. 그래서 죽음이 나쁘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구약 시대에는 그런 천국의 개념, 사후세계에 관한 개념이 별로 약해서 죽는것 보다 사는게 더 낫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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