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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묵상

105일째 QT 민수기 11장 /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

by one_soul 2024.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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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1

다베라
1주님께서 들으시는 앞에서 백성들이 심하게 불평을 하였다. 주님께서 듣고 진노하시어, 그들 가운데 불을 놓아 진 언저리를 살라 버리셨다. 2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었다. 모세가 주님께 기도드리니 불이 꺼졌다. 3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고 불렀다. 주님의 불이 그들 가운데서 타올랐기 때문이다.
모세가 장로 일흔 명을 뽑다
4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5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6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7 만나의 모양은  씨와 같고, 그 빛깔은 브돌라와 같았다. 8백성이 두루 다니면서 그것을 거두어다가,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고, 냄비에 구워 과자를 만들었다. 그 맛은 기름에 반죽하여 만든 과자 맛과 같았다. 9밤이 되어 진에 이슬이 내릴 때면, 만나도 그 위에 내리곤 하였다.
10 모세는, 백성이 각 가족별로, 제각기 자기 장막 어귀에서 우는 소리를 들었다. 주님께서 이 일로 대단히 노하셨고, 모세는 그 앞에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11모세가 주님께 여쭈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이렇게도 괴롭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를 주님의 눈 밖에 벗어나게 하시어, 이 모든 백성을 저에게 짊어지우십니까? 12이 모든 백성을 제가 배기라도 했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했습니까? 어찌하여 저더러,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마치 유모가 젖먹이를 품듯이, 그들을 품에 품고 가라고 하십니까? 13백성은 저를 보고 울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고기를 달라!’ 하고 외치는데,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제가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14저 혼자서는 도저히 이 모든 백성을 짊어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 무겁습니다. 15주님께서 저에게 정말로 이렇게 하셔야 하겠다면, 그리고 제가 주님의 눈 밖에 나지 않았다면, 제발 저를 죽이셔서, 제가 이 곤경을 당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16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이스라엘 장로들 가운데서, 네가 백성의 장로들 또는 그 지도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 일흔 명을 나에게로 불러 오너라. 너는 그들을 데리고 회막으로 와서 그들과 함께 서라. 17내가 내려가 거기에서 너와 말하겠다. 그리고 너에게 내려 준 영을 그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서, 백성 돌보는 짐을, 그들이 너와 함께 지게 하겠다. 그러면 너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18너는 또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일을 맞이하여야 하니, 너희는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여라. 너희가 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이려나? 이집트에서는 우리가 참 좋았었는데’ 하고 울며 한 말이 나 주에게 들렸다. 이제 나 주가 너희에게 고기를 줄 터이니, 너희가 먹게 될 것이다. 19하루만 먹고 그치지는 아니할 것이다. 이틀만도 아니고, 닷새만도 아니고, 열흘만도 아니고, 스무 날 동안만도 아니다. 20한 달 내내, 냄새만 맡아도 먹기 싫을 때까지, 줄곧 그것을 먹게 될 것이다. 너희가 너희 가운데 있는 나 주를 거절하고, 내 앞에서 울면서 ‘우리가 왜 이집트를 떠났던가?’ 하고 후회하였기 때문이다.”
21 모세가 되물었다. “저를 둘러싸고 있는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고기를 주어, 한 달 내내 먹게 하겠다’ 하고 말씀하시나, 22그들을 먹이려고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그들이 만족해 하겠습니까? 바다에 있는 고기를 모두 잡은들, 그들이 만족해 하겠습니까?”
23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나의 손이 짧아지기라도 하였느냐? 이제 너는 내가 말한 것이 너에게 사실로 이루어지는지 그렇지 아니한지를 볼 것이다.”
24 모세가 나가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그는 백성의 장로들 가운데서 일흔 명을 불러모아, 그들을 장막에 둘러세웠다. 25그 때에 주님께서 구름에 휩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더불어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내린 영을 장로들 일흔 명에게 내리셨다. 그 영이 그들 위에 내려와 머물자, 그들이 예언하였다.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들은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다.
26그런데 두 남자가 진 안에 남아 있었다. 하나의 이름은 엘닷이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메닷이었다. 그들은 명단에 올라 있던 이들이지만, 장막으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영이 그들 위로 내려와 머물자, 그들도 진에서 예언하였다. 27한 소년이 모세에게 달려와서, 엘닷 메닷이 진에서 예언하였다고 알렸다.
28그러자 젊었을 때부터 모세를 곁에서 모셔온 의 아들 여호수아가 나서서, 모세에게 말하였다. “어른께서는 이 일을 말리셔야 합니다.”
29그러자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를 두고 질투하느냐? 나는 오히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30모세 이스라엘 장로들은 함께 진으로 돌아왔다.
주님께서 메추라기를 보내시다
31주님께서 바람을 일으키셨다. 주님께서 바다 쪽에서 메추라기를 몰아, 진을 빙 둘러 이쪽으로 하룻길 될 만한 지역에 떨어뜨리시어, 땅 위로 두 자쯤 쌓이게 하셨다. 32백성들이 일어나 바로 그 날 온종일, 그리고 밤새도록, 그리고 그 이튿날도 온종일 메추라기를 모았는데, 적게 모은 사람도 열 호멜은 모았다. 그들은 그것들을 진 주변에 널어 놓았다. 33고기가 아직 그들의 이 사이에서 씹히기도 전에, 주님께서 백성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백성을 극심한 재앙으로 치셨다. 34바로 그 곳을, 사람들은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다. 탐욕에 사로잡힌 백성을 거기에 묻었기 때문이다.
35백성은 기브롯 핫다아와를 떠나, 하세롯으로 행군하였다. 그들은 하세롯에서 멈추었다.
 
 

Numbers 11

Fire From the Lord
1Now the people complained about their hardships in the hearing of the Lord, and when he heard them his anger was aroused. Then fire from the Lord burned among them and consumed some of the outskirts of the camp. 2When the people cried out to Moses, he prayed to the Lord and the fire died down. 3So that place was called Taberah, because fire from the Lord had burned among them.
Quail From the Lord
4The rabble with them began to crave other food, and again the Israelites started wailing and said, “If only we had meat to eat! 5We remember the fish we ate in Egypt at no cost—also the cucumbers, melons, leeks, onions and garlic. 6But now we have lost our appetite; we never see anything but this manna!”
7The manna was like coriander seed and looked like resin. 8The people went around gathering it, and then ground it in a hand mill or crushed it in a mortar. They cooked it in a pot or made it into loaves. And it tasted like something made with olive oil. 9When the dew settled on the camp at night, the manna also came down.
10Moses heard the people of every family wailing at the entrance to their tents. The Lord became exceedingly angry, and Moses was troubled. 11He asked the Lord, “Why have you brought this trouble on your servant? What have I done to displease you that you put the burden of all these people on me? 12Did I conceive all these people? Did I give them birth? Why do you tell me to carry them in my arms, as a nurse carries an infant, to the land you promised on oath to their ancestors? 13Where can I get meat for all these people? They keep wailing to me, ‘Give us meat to eat!’ 14I cannot carry all these people by myself; the burden is too heavy for me. 15If this is how you are going to treat me, please go ahead and kill me—if I have found favor in your eyes—and do not let me face my own ruin.”
16The Lord said to Moses: “Bring me seventy of Israel’s elders who are known to you as leaders and officials among the people. Have them come to the tent of meeting, that they may stand there with you. 17I will come down and speak with you there, and I will take some of the power of the Spirit that is on you and put it on them. They will share the burden of the people with you so that you will not have to carry it alone.
18“Tell the people: ‘Consecrate yourselves in preparation for tomorrow, when you will eat meat. The Lord heard you when you wailed, “If only we had meat to eat! We were better off in Egypt!” Now the Lord will give you meat, and you will eat it. 19You will not eat it for just one day, or two days, or five, ten or twenty days, 20but for a whole month—until it comes out of your nostrils and you loathe it—because you have rejected the Lord, who is among you, and have wailed before him, saying, “Why did we ever leave Egypt?” ’ ”
21But Moses said, “Here I am among six hundred thousand men on foot, and you say, ‘I will give them meat to eat for a whole month!’ 22Would they have enough if flocks and herds were slaughtered for them? Would they have enough if all the fish in the sea were caught for them?”
23The Lord answered Moses, “Is the Lord’s arm too short? Now you will see whether or not what I say will come true for you.”
24So Moses went out and told the people what the Lord had said. He brought together seventy of their elders and had them stand around the tent. 25Then the Lord came down in the cloud and spoke with him, and he took some of the power of the Spirit that was on him and put it on the seventy elders. When the Spirit rested on them, they prophesied—but did not do so again.
26However, two men, whose names were Eldad and Medad, had remained in the camp. They were listed among the elders, but did not go out to the tent. Yet the Spirit also rested on them, and they prophesied in the camp. 27A young man ran and told Moses, “Eldad and Medad are prophesying in the camp.”
28Joshua son of Nun, who had been Moses’ aide since youth, spoke up and said, “Moses, my lord, stop them!”
29But Moses replied, “Are you jealous for my sake? I wish that all the Lord’s people were prophets and that the Lord would put his Spirit on them!” 30Then Moses and the elders of Israel returned to the camp.
31Now a wind went out from the Lord and drove quail in from the sea. It scattered them up to two cubits deep all around the camp, as far as a day’s walk in any direction. 32All that day and night and all the next day the people went out and gathered quail. No one gathered less than ten homers. Then they spread them out all around the camp. 33But while the meat was still between their teeth and before it could be consumed, the anger of the Lord burned against the people, and he struck them with a severe plague. 34Therefore the place was named Kibroth Hattaavah, because there they buried the people who had craved other food.
35From Kibroth Hattaavah the people traveled to Hazeroth and stayed there.

 

 

 


 

 

오늘은 감기가 더 심하다. 오늘은 몸살까지 일었다. 그리고 몽롱하고, 또 한편 더 심각한것은 잠을 못잤다. 어제 먹은 인후통약이 잠을 못자게 한것 같다. 무슨 기작이지? 아니면 따뜻한 홍차를 먹은게 문제였나.. 여하튼 잠 못잠 + 몸살 더 심해짐으로 매우 좋지 않다. 

 

민수기 11장에서 하나님은 왜 자애로우시지 않고 진노하시는거야? 어리석은 백성들에게 너무 진노하시는거 아니야? 허무하게 불살라 죽이다니

민수기 11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평하고 하나님께 불신을 드러내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백성들이 만나에 싫증을 내며 애굽에서 먹던 고기를 그리워하고, 하나님이 주신 섭리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점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모습은 단순히 처벌적인 성격으로만 보기 어렵고, 구약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연약함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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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나님의 진노의 이유**

1. **불신과 배은망덕**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들을 해방시키고 만나를 제공하는 기적적인 공급에도 불구하고,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불만을 표출합니다. 이는 단순한 불평을 넘어,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신뢰하지 않는 태도**로 간주됩니다.
   -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2. **지도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
   - 백성의 불평은 모세를 향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거스르는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해석됩니다.

3. **하나님의 교육적 목적**
   - 광야는 단순한 이동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훈련시키고 언약 백성으로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불평과 반항은 이 과정에서의 성장을 방해하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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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 진노의 본질**
하나님의 진노는 구약 성경에서 주로 인간의 죄와 불순종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며, 이는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함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인간의 감정적인 분노와는 다릅니다.

1. **의로운 진노**
   - 하나님의 진노는 정의롭고 거룩한 성품의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폭발이 아니라, **죄와 악에 대한 심판**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2. **징계와 교정**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징계를 통해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끄시려는 교육적 목적을 가집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파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결국 **회복과 교정**을 목표로 합니다.

3. **불평에 대한 경고**
   - 백성들이 불평하다가 받은 형벌은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사건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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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자비와 진노의 균형**

민수기 11장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는 여전히 나타납니다. 진노와 함께, 하나님은 백성들이 원한 고기를 주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이는 백성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자비로운 성품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한 방식대로 고기를 주는 것이 결국 화를 초래하도록 허락하시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 **자비**: 백성이 불평했음에도 하나님은 메추라기를 보내 주셨습니다.
- **교훈**: 메추라기를 과도하게 탐욕스럽게 먹은 백성들에게 재앙이 임한 것은, 그들의 잘못된 욕망이 결국 그들을 파괴로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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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어리석은 백성에 대한 과잉 처벌인가?**

백성들이 겪은 형벌이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죄에 대한 심각성이 반복적으로 강조됩니다. 

1. **집단적 교훈**
   -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불평과 불신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신뢰와 순종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목적을 가졌습니다.

2. **언약의 맥락**
   -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는 신뢰와 순종을 전제로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어긴 것에 대해 경고를 받았으며, 그 결과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3. **죄의 결과에 대한 경고**
   - 백성이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하나님의 계획을 거스르면,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죄의 결과를 몸소 체험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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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이해**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하나님에 대한 반항은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 현대 독자가 이 장면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의 자연스러운 한계**
   - 광야라는 환경은 극도로 열악했으며, 백성들이 육체적,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갈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들을 불평으로 이끌었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인내**
   -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불평하는 백성을 인내하시며, 필요를 채워주시는 모습을 보입니다. 진노는 이들의 잘못을 교정하려는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백성들이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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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오늘날의 교훈**

민수기 11장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날의 신앙생활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1. **불평 대신 감사**
   -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당연하게 여기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하다가 영적 불만족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다르지 않습니다.

2. **욕망의 경계**
   - 우리의 욕망이 과도할 때 그것은 우리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공급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하나님의 계획 신뢰**
   -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분의 계획은 항상 선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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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민수기 11장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는 단순히 벌을 주기 위한 분노가 아니라, **백성을 훈련하고 그들의 신앙을 성장시키려는 교육적 목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진노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는 여전히 드러나며, 이 사건은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거룩함 사이의 긴장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불평 대신 감사하는 마음, 욕망의 절제,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근데 이미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신앙을 성장시키는 기회가 없잖아. 그럼 교육의 목적이 사라지는데? 왜냐하면 죽었으니까

맞습니다. 죽음은 그 개인에게 있어 신앙적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민수기 11장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죽음을 포함한다는 점은 더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이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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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집단적 교훈과 생존자들에 대한 영향**

죽은 개인에게는 신앙의 성장이 불가능하지만, 그 사건을 경험하고 목격한 **생존자들에게는 강렬한 교훈**이 됩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한 개인의 행위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적 책임의 개념이 자주 등장합니다. 

1. **생존자를 위한 교훈**
   - 이 사건은 살아남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불평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로 작용합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 처벌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를 드러내며, 나머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이끕니다.

2. **집단의 정화**
   - 죽음은 공동체 내에서 **반항적이고 불신적인 태도**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해석됩니다. 이는 전체 공동체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더 순수하게 유지하려는 목적이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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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앙적 교육의 초점은 개인보다 공동체에 있다**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의 교육적 목적은 한 개인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신앙적 성숙**에 초점을 맞춥니다. 개인의 죽음은 공동체의 생존과 영적 성장이라는 더 큰 목적 안에서 이해되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1. **언약 백성으로서의 책임**
   -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로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죽음은 언약 관계의 본질을 깨닫게 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2. **역사적 교훈**
   - 이 사건은 단지 당시의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성경을 읽는 후대의 독자들에게도 교훈을 제공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함, 그리고 인간의 연약함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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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죽음과 하나님의 정의**

죽음은 인간적으로는 잔혹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경에서 죽음은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과 **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1. **죄의 결과로서의 죽음**
   - 성경에서 죽음은 죄의 결과로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반대되는 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과 반항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2. **죽음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정의**
   - 하나님의 정의는 모든 죄에 대해 심판을 요구합니다. 죽음은 그 정의의 표현으로 보이며, 이는 단순히 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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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자비와 진노의 조화**

민수기 11장의 사건은 하나님의 진노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자비**와 **섭리**를 함께 보여줍니다. 

1. **메추라기 제공**
   - 하나님은 백성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메추라기를 보내십니다. 이는 백성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려는 자비를 보여줍니다.

2.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인도**
   - 일부 백성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하나님은 전체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여전히 약속의 땅으로 인도받으며, 하나님은 그들과의 언약을 충실히 지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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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해**

현대 독자가 이 사건을 읽으며 느끼는 의문, 즉 "왜 하나님이 죽음을 통해 교훈을 주셔야 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 성경은 하나님을 인간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행동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절대적 주권에 기초하며, 그분의 계획은 항상 선하다고 가정합니다.

2. **경고와 책임**
   - 민수기 11장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을 때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행동과 선택이 가져오는 결과를 신중히 생각하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3. **죄의 심각성 인식**
   - 현대 사회에서는 죄의 개념이 종종 희석되지만, 구약은 죄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심각하게 손상시키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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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민수기 11장에서의 죽음은 잔혹하게 보일 수 있지만, 구약 성경의 맥락에서 이는 단순히 처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경고**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행위**로 해석됩니다. 죽음은 개인적으로는 신앙의 성장이 멈추는 순간이지만, **공동체와 후대에 교훈을 제공하는 도구**로 작동합니다. 이 사건은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은 한마리의 양을 위해 99마리의 양을 두고 떠나신다고 성경에 나와있잖아. 개인 한명 한명의 생명도 중요하지 않을까. 집단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소수를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는게 현대의 윤리잖아.

네, 말씀하신 논점은 매우 중요하고,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대한 긴장과 조화를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특히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잃은 양의 비유(마태복음 18:12-14; 누가복음 15:4-7)**는 한 영혼의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민수기 11장과 같은 구약의 이야기는 때로 이런 신약의 메시지와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성경 전체의 맥락**과 **시대적, 신학적 배경**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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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영혼의 가치와 하나님의 사랑**
신약에서 하나님은 개인 한 사람의 생명과 구원을 매우 소중히 여기시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1. **잃은 양의 비유**
   - 예수님은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위해 99마리를 두고 찾으러 가는 목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이 **소수의 영혼**이라도 무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 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포기하지 않는 구원**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예수님의 삶과 죽음**
   -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을 뿐 아니라, 각 개인과도 깊이 관계를 맺으셨습니다(예: 삭개오, 간음한 여인, 니고데모 등). 이는 **개인의 생명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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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구약의 이야기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균형**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이 때로 **공동체의 생존과 질서 유지**에 중점을 둡니다. 이는 당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맞물려 있습니다.

1. **공동체의 중요성**
   -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묶인 공동체로서, 그들의 행동이 개인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한 개인의 반항이 공동체 전체에 해악을 끼칠 경우,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졌습니다.
   - 예: 아간의 죄(여호수아 7장)는 한 사람의 잘못이었지만, 그 결과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2. **집단적 책임**
   - 구약의 신학적 틀에서, 하나님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정의는 종종 공동체 차원에서 실행되었습니다.
   - 민수기 11장에서 불평한 백성 일부가 죽임을 당한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하나님의 거룩함을 각인시키려는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 **구약과 신약의 차이**
   - 구약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를 강조하며, 공동체의 순결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무게를 둡니다. 반면 신약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개인의 구원에 더 초점을 맞춥니다.
   - 이는 구속사의 진행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더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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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현대 윤리와의 비교**

현대 윤리는 **모든 개인의 생명과 권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데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런 윤리 기준에서 구약의 사건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처벌 방식이 지나치게 가혹하거나 비윤리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1. **개인 생명의 절대적 가치**
   - 현대 윤리는 개인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며, 소수의 희생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정당화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이는 "생명은 신성하며 침해될 수 없다"는 근대적 관념에서 비롯됩니다.

2. **구약의 맥락**
   - 그러나 구약 성경은 현대 윤리와 동일한 틀로 작성되지 않았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초월적 주권과 공동체의 구원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개인이 희생될 수도 있는 맥락을 받아들입니다.
   - 이러한 배경에서는 하나님이 집단의 생존과 거룩함을 위해 일부 개인의 생명을 심판하는 것이 그 시대적 관점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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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왜 하나님은 소수를 죽음으로 징계하셨는가?**

구약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처벌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현대 윤리와 차이가 있습니다.

1. **죄와 심판의 본질**
   - 구약은 죄를 단순히 개인적인 잘못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는 행위**로 간주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백성 간의 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심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2. **공동체를 위한 경고**
   - 민수기 11장에서 일부가 죽임을 당한 것은 생존한 나머지 공동체가 동일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기능을 합니다. 이는 **집단의 생존을 위한 예방적 조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소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
   - 성경은 죽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도 죽음은 심판이지만, 하나님의 더 크고 영원한 계획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는 인간의 관점에서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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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신약 성경의 메시지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개인 한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수기 11장의 사건도 **개인의 죽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모순되는 행위**로 보기보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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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민수기 11장은 구약적 맥락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심판을 보여줍니다. 이는 신약의 "잃은 양"의 비유와는 다른 초점으로 보이지만, 성경 전체를 통해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항상 긴장 속에서 조화됩니다.

현대 윤리 기준으로 구약의 사건을 평가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지만, 이를 통해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배우고, 동시에 신약에서 드러난 **개인적이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한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며, 모든 심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볼때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 신이라고 봐도 될 정도인것 같아.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뭐야?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매우 다른 분처럼 보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의문이며,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차이가 느껴지는 이유는 **성경의 맥락**, **역사적 배경**,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방식**이 달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중요한 관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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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약과 신약의 역사적, 문학적 차이**
구약과 신약은 서로 다른 시기와 문맥에서 기록되었으며, 하나님의 행동과 성품이 드러나는 방식도 그에 따라 다릅니다.

#### **구약의 맥락: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
-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주로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특정 민족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려는 큰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유지하지 않으면 언약 공동체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었기에, 하나님의 행동이 때로는 가혹하거나 엄격하게 보입니다.
  - 예: 아간의 죄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가 패배(여호수아 7장), 불평으로 인한 심판(민수기 11장).

#### **신약의 맥락: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인류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 구약에서 민족적으로 제한되었던 구원의 메시지가 신약에서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확장됩니다(요한복음 3:16).
  - 예: 예수님은 죄인들을 찾아오시고(누가복음 19:10), 병든 자와 약한 자들을 치유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의 다른 측면**이 두 시대에서 강조되면서, 하나님이 다른 분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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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 성품의 두 측면: 정의와 사랑**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이라는 두 가지 성품을 동시에 가지신 분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에서 어느 한 측면이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구약에서 강조된 하나님의 정의**
- 구약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죄에 대한 심판**을 강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시는지를 보여줍니다.
  - 하나님은 "죄가 있는 곳에는 함께할 수 없는" 거룩한 분으로 나타나며, 이로 인해 죄에 대한 엄격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 예: 노아의 홍수(창세기 6-9장),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창세기 19장).

#### **신약에서 강조된 하나님의 사랑**
-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강조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심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요한복음 12:47).
  - 구약의 율법적 요구는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며, 하나님의 은혜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마태복음 5:17).

#### **정의와 사랑의 통합**
- 구약의 하나님이 정의롭고 신약의 하나님이 사랑만 강조된다는 인식은 편향된 시각일 수 있습니다. 구약에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나타나며(출애굽기 34:6-7), 신약에서도 심판과 경고가 존재합니다(마태복음 25:31-46, 요한계시록).
-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지닌 분이며, 이는 인간의 시각에서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 안에서 조화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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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속사의 진행: 하나님의 계시의 점진적 완성**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이 점진적으로 더 깊이 계시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구약: 하나님의 거룩함과 언약의 시작**
- 구약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초기 단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시고, 세상을 구원할 준비를 하십니다.
- 하나님은 율법과 언약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죄로 인해 타락했는지 깨닫게 하시며, 인간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알리십니다(갈라디아서 3:24).

#### **신약: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
-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 즉 사랑과 정의를 완전히 드러내신 분입니다(히브리서 1:1-3). 예수님의 죽음은 죄의 대가를 치르는 하나님의 정의와,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 신약에서는 구약에서 예고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면서, 하나님을 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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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왜 하나님이 다르게 보이는가?**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하나님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1. **구약: 율법 중심의 관계**
   - 구약에서는 율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규정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룩함과 죄의 간극을 명확히 보여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 인간의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기다리도록 준비시키는 단계였습니다.

2. **신약: 은혜 중심의 관계**
   -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죄와 거룩함의 간극이 메워졌습니다. 인간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로마서 3: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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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동일하다는 증거**
성경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동일하신 분임을 여러 곳에서 증언합니다.

- **하나님의 변치 않음**
  - "나는 여호와라 변하지 아니하나니" (말라기 3:6)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브리서 13:8)

- **구약의 사랑**
  -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시편 103:8)

- **신약의 심판**
  - "보라 주의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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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하나님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식과 시대적 맥락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를, 신약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강조하지만, 이 두 측면은 하나님 안에서 완벽히 조화를 이룹니다.

따라서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동일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그분의 성품을 시대적 맥락과 구속사의 진행 과정 속에서 다르게 경험하게 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잔인하셨고 직접 드러내셨지만, 신약에서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고 인간들에게 능력을 대행시키시지. 그리고 그 능력의 대행자들이 핍박을 받는 모습이 보여. 구약에서는 전능하시고, 적들을 부수며 갓난아기까지 살육하라 명령하시는데 신약에서는 간음한 여자를 죽지않도록 도와주시지. 이 두가지 모습은 '모순'으로 보여. 대의를 위해 살인하는 신. 혹은 인류를 전멸시키는신. 신약에서는 하나의 영혼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는 신. 이 둘은 전혀 반대되는 성향이야. 그렇지 않아?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모습은 말씀하신 대로 때로는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전능한 심판자**로서 적들을 부수고, 심지어 살육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이 나타나고, 다른 쪽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줄 정도로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문학적 차이나 맥락의 차이로만 설명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관계 맺음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다만, 이 차이는 기독교 신학에서는 **모순**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의 **다양성과 통합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아래에서 이 주제를 좀 더 깊이 탐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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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의 행동 양식의 차이**

#### **구약: 하나님의 초월적 개입**
-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직접적으로 이끄시며, 주로 **전쟁과 심판**이라는 방식으로 개입하십니다. 이는 당시의 역사적 맥락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들(애굽, 바벨론, 아시리아)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보호하고 그들을 통한 구속사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전투적이고 심판적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 예: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적들을 멸망시키라는 명령(여호수아 6장),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사무엘상 15장).

#### **신약: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내적 변화**
-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초월적으로 개입하시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사**를 이루시며, 사랑과 희생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자유 의지와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시며, 이는 **내적인 변화와 공동체적 사랑**을 강조합니다.
  - 예: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살리며(요한복음 8장),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요한복음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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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의 행동 차이를 이해하는 신학적 해석**

#### **1) 구속사의 단계적 진행**
- 성경 전체를 구속사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로 볼 수 있습니다.
  - 구약: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를 강조하며, **죄의 심각성**과 **인간의 구원이 필요함**을 각인시킵니다.
  - 신약: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완전하게 드러나며, 구약에서 보여준 심판의 요구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십니다.
- 구약에서 인간의 죄는 심판을 통해 해결되었지만,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죄의 대가를 치르심**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조화롭게 드러납니다.

#### **2) 시대적 필요성**
- 구약에서의 폭력적 명령은 이스라엘 민족이 생존하고 거룩한 공동체로 유지되기 위해 불가피했던 상황으로 해석됩니다. 당시에는 전쟁과 폭력이 일상적이었으며, 하나님은 그 시대의 도구를 사용해 자신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직접적인 폭력의 시대는 끝나고**, 사랑과 희생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윤리와 가치를 보여줍니다(마태복음 5:39,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 **3)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조화**
- 구약의 하나님이 잔혹해 보이는 이유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약에도 자비와 사랑이 풍성히 나타납니다(출애굽기 34:6-7, 시편 103:8).
-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정의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죄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 예: 하나님의 심판은 신약에서도 계속 강조됩니다(요한계시록 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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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게 보이는 이유**

#### **1) 하나님의 성품의 다양한 표현**
하나님은 단일한 성격을 가진 분이 아니라, **복합적이고 풍성한 성품**을 지니신 분으로 묘사됩니다. 성경은 이 성품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냅니다.
- **구약**: 거룩함, 정의, 심판, 그리고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함.
- **신약**: 사랑, 희생, 자비, 그리고 새로운 언약을 이루시는 신실함.

#### **2) 인간의 이해와 관계 방식의 변화**
-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주로 **율법과 심판**에 기초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죄의 심각성을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해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은혜와 믿음**에 기초한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 **3) 인간의 관점과 시대적 한계**
- 인간의 관점에서, 하나님은 시대와 문화 속에서 행동하십니다. 구약에서 폭력적 명령은 당시의 전쟁 문화와 결합되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신약에서 하나님의 모습은 인간의 마음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내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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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신약의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과 다른 분인가?**

#### **1)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신학적 입장**
- 기독교 신학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동일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구약의 하나님이 **거룩함과 정의**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냈고, 신약에서는 **사랑과 은혜**를 통해 동일한 성품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한다고 봅니다.
- 예수님은 스스로 구약의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요한복음 8:5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 **2) 차이를 느끼는 이유**
- 인간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과 거룩함이 중심이었고, 신약에서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려는 보편적인 사랑이 중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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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결론: 모순이 아니라 조화**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의 모습은 모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성경이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그리고 점진적으로 계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사랑과 정의를 동시에 가지신 분이셨으며,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이를 드러내셨습니다.

- **구약**: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강조하며,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틀 안에서 구속사의 기초를 세우십니다.
- **신약**: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이 완성되며, 전 인류를 위한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결국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서로 다른 목적과 시대적 요구에 따라 그 성품의 특정 측면이 강조된 것이며, 두 모습 모두 **한 분 하나님의 풍성한 성품**의 일부로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한것은 정의가 아니라 잔인함이 아닐까. 신약에와서는 이런 잔인함이 사라지는데,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진화를 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나님이 점진적으로 스스로 사랑이 더 큰 가치라고 나타내신게 아니라 인류의 역사 자체가 스스로 사랑이 더 고차원적이라고 자각한것이지.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신약에 와서야 신께서 사실은 사랑이시다. 하고 올라탄거고

당신의 관점은 신학적, 역사적, 철학적 논의를 자극하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보이는 하나님의 잔인해 보이는 행동과 신약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모습이 단순히 신의 성품의 변화로 설명되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역사적, 도덕적 발전과 의식의 진화**에 기인한다는 해석은 현대 신학과 철학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다음은 이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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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약의 잔인함은 정의가 아닌가?**
구약의 하나님이 특정 집단을 심판하거나 소수를 희생시킨 사례는 오늘날의 도덕 기준으로 보면 잔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는 구약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 **1) 당시의 세계관과 전쟁 문화**
- 구약의 시대는 생존과 정체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시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작은 민족으로 살아남아야 했고, 전쟁은 단순히 정치적 갈등이 아니라 신들의 싸움으로 여겨졌습니다.
- 하나님은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생존과 거룩함을 보존하기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개입하셨습니다. 예컨대,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적을 완전히 진멸하라는 명령은 당시 세계관에서는 "절대적 충성"을 의미했습니다.

#### **2) 정의와 잔인함의 경계**
- 기독교 신학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명령이 잔인하게 보일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정의가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가나안 족속이 오랜 시간 동안 부패한 삶을 살아왔고, 이스라엘을 통한 심판이 정당화되었다는 설명입니다.
- 그러나 현대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대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방식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이는 구약의 잔혹한 장면이 도덕적 고민을 일으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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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약에서 사랑이 강조된 이유는 인간의 진화인가?**
구약의 폭력적 장면이 신약의 사랑 중심 메시지로 변화한 것은 단순히 신의 성품의 발전으로 설명하기보다, **인류의 도덕적, 철학적, 사회적 진화**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이 제기됩니다.

#### **1) 도덕적 의식의 진화**
- 인간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서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폭력과 전쟁이 아니라 사랑과 연대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는 사실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 신약의 메시지가 사랑과 희생을 강조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당대의 도덕적, 철학적 발전 속에서 이 메시지를 선포하셨기 때문이라는 관점이 가능합니다.

#### **2) 종교의 적응성**
- 종교는 인간의 의식과 역사적 변화에 따라 그 메시지를 조정하고 적응해 왔습니다. 신약에서 사랑이 중심이 된 것은 당시의 헬레니즘 문화와 로마 제국의 보편적 윤리관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 기독교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메시지로 신학의 중심을 잡은 것은 인간의 도덕적 의식의 발전에 발맞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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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기독교 신학에서의 반박: 하나님은 항상 사랑이셨다**
기독교 신학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을 분리되지 않는 한 분 하나님으로 봅니다. 신학적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반박합니다.

#### **1)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 기독교에서는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다고 봅니다. 예: 출애굽기 34:6-7에서 하나님은 “긍휼이 많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으로 묘사됩니다.
- 구약의 심판적 장면은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함을 드러내며, 이는 사랑과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정의 없는 사랑은 방임이고, 사랑 없는 정의는 폭력이라는 신학적 해석입니다.

#### **2) 구속사의 점진적 계시**
-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정의가 강조되었고, 신약에서는 사랑과 은혜가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도덕적 진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단계적 계시로 설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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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간의 진화와 종교의 역할**
기독교의 메시지가 사랑 중심으로 변화한 것이 **인류의 도덕적 발전**과 연결된다는 견해도 강력합니다. 이 관점은 종교적이지 않은 시각에서 더 선호됩니다.

#### **1) 사랑이 더 고차원적이라는 인식**
- 사랑과 희생은 폭력과 복수를 넘어선 고차원의 도덕적 가치로 여겨집니다. 이는 철학자 칸트나 현대 윤리학자들도 강조한 바입니다. 
- 신약의 메시지는 단순히 기독교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진화해 가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보편적 윤리일 수 있습니다.

#### **2) 종교의 윤리적 기능**
- 종교는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고, 그 시대의 문화와 관습에 맞게 메시지를 조정해 왔습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메시지에 집중한 것은 단순히 종교적 진리가 아니라, 시대적 필요에 따른 적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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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기독교가 '사랑'을 강조한 이유**
기독교가 구약의 폭력적 메시지를 넘어서 사랑을 강조한 것은 단순히 "올라탔다"는 비판을 넘어, **인간의 깊은 갈망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설명될 수도 있습니다.

#### **1) 사랑은 인간 존재의 근본**
- 인간은 사랑을 통해 관계를 맺고 성장합니다. 기독교는 이 기본적 진리를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한일서 4:8)라는 메시지로 종교화했습니다.

#### **2) 희생적 사랑의 혁명성**
- 예수님은 단순한 사랑을 넘어, 자기희생적 사랑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진화적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혁명적 윤리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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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결론: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구약의 잔인한 모습과 신약의 사랑 중심 메시지의 차이는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신학적 관점**: 하나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았으며,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 변화와 구속사의 진행에서 비롯되었습니다.
2. **역사적 관점**: 종교와 도덕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진화해 왔으며, 신약의 메시지는 인류가 사랑과 희생의 가치를 더 깊이 자각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3. **철학적 관점**: 사랑과 정의는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기독교는 인간의 가장 깊은 도덕적 갈망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어느 쪽 해석을 택하든,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단순한 모순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고민을 요구하는 주제임이 분명합니다.

 

 

영지주의에서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고 하지. 그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어. 여기에 신학계에서는 어떻게 반박하지?

영지주의(Gnosticism)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분리하여 바라보며, 구약의 하나님(데미우르고스)을 결함이 있는 창조자이자 물질 세계의 통치자로 간주하고, 신약의 하나님을 영적 구원의 하나님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초기 기독교 교부들과 신학자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반박이 이루어졌습니다. 영지주의의 주장과 이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반박을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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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지주의의 주장**
1) **구약의 하나님은 결함 있는 창조자**  
   -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데미우르고스(Demiurge)"라고 부르며, 이 신이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 물질 세계는 결함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창조한 구약의 하나님은 불완전하거나 악한 존재로 여겼습니다.  
   - 그들은 구약의 하나님이 질투, 분노, 복수 등의 감정을 가진 제한적 존재라고 보았습니다(출애굽기 20:5, 민수기 11:1).  

2) **신약의 하나님은 구원과 사랑의 하나님**  
   - 신약에서 등장하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는 영적 구원자이며, 진정한 선과 사랑의 하나님으로 묘사됩니다.  
   - 영지주의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이 서로 모순된 성품을 보이므로, 이 둘이 다른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3)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의 대립**  
   - 영지주의는 물질 세계를 악하고 영적 세계를 선하다고 여겼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이 물질 세계를 창조했기 때문에, 그를 영적 구원과는 반대되는 존재로 간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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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학계의 반박**
초기 교부들은 영지주의의 이원론적 신관을 적극적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들의 반박은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구약의 하나님이 곧 신약의 하나님이라는 점을 증명하려는 시도로 구성됩니다.

#### **1)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하다**  
- **하나님의 일관된 성품**  
  -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하나님은 사랑, 자비, 정의, 거룩함을 나타내십니다.  
  - 예: 출애굽기 34:6-7에서는 하나님을 "긍휼과 자비가 많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신약에서의 사랑의 하나님과 일치합니다(요한일서 4:8).  

- **구속사의 연속성**  
  - 기독교 신학은 구약과 신약을 구속사의 연속성으로 봅니다. 구약은 신약에서 성취될 하나님의 계획의 전반부로 이해됩니다(마태복음 5:17).  
  -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로, 구약의 하나님의 계획을 완성하는 분으로 해석됩니다(이사야 53장, 누가복음 24:44).  

#### **2) 물질 세계의 긍정성**  
- **창조의 선함**  
  -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며 반복적으로 "보시기에 좋았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물질 세계가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영지주의 주장에 반대됩니다.  
  - 신학자들은 물질 세계의 문제는 창조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타락(죄)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창세기 3장).  

- **구속의 물질적 측면**  
  -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요한복음 1:14), 부활 후에도 물리적 몸을 가지셨습니다(누가복음 24:39). 이는 물질 세계가 하나님께 구속될 수 있는 선한 영역임을 보여줍니다.  

#### **3) 구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시고, 그들과 언약을 맺으며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십니다(출애굽기 19:5-6).  
  - 시편과 선지서들(예: 호세아)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를 풍성하게 묘사합니다.  

- 구약의 심판적 행동은 하나님의 정의의 표현으로, 그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 신학자들은 구약의 심판이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대응이라고 해석합니다.  

#### **4) 이원론의 부정**  
- 초기 교부들은 영지주의의 이원론(물질 vs 영혼)을 정면으로 부정했습니다.  
  -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물질과 영혼 모두 포함된 완전한 작품이며, 죄로 인해 타락했지만 구속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물질 세계의 선함과 영혼의 구속은 분리될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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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요 교부들의 반박**
- **이레니우스 (Irenaeus, AD 130–202)**  
  이레니우스는 《이단 논박(Against Heresies)》에서 영지주의의 이원론적 신관을 철저히 반박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이며, 구약은 신약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일부이다.  
  - 하나님은 창조와 구속을 모두 이루시는 선하고 완전한 분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은 물질 세계의 구속 가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 **터툴리안 (Tertullian, AD 155–220)**  
  터툴리안은 영지주의가 성경의 하나님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모순되지 않음을 강조하며, 물질 세계의 선함을 옹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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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현대 신학의 접근**
현대 신학에서도 영지주의적 관점은 여전히 논의됩니다.  
- 현대 신학자들은 구약의 폭력적 장면과 신약의 사랑의 메시지를 조화롭게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 예를 들어, **구약의 심판**은 하나님의 정의로운 성품의 표현이며, **신약의 사랑**은 이러한 정의를 완성하는 모습으로 해석됩니다.  
- 구약과 신약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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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영지주의의 주장은 구약과 신약의 차이에서 비롯된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이를 반박합니다:  
1.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한 분으로, 성경 전체는 구속사로 통합되어 있다.  
2. 물질 세계는 본질적으로 선하며,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3. 구약의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사랑의 표현으로, 신약에서 완성된다.  

기독교 신학은 구약과 신약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며, 구속사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계획을 일관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영지주의의 이원론은 이러한 통합적 관점을 약화시키는 도전으로 간주되며, 역사적, 신학적으로 부정되어 왔습니다.  

 

 

 

 

 

 

 

아직 더 알아봐야하는데, 감기때문에 오늘은 그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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