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3
GENESIS 33
창세기 33장에 나오는 "엘 엘로헤 이스라엘" (El-Elohe-Israel)은 히브리어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또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창세기 33장 20절에 등장합니다. 여기서 "엘" (El)은 "하나님"을 뜻하고, "엘로헤" (Elohe)는 "하나님(들)"의 소유격 형태로 "엘로힘"(Elohim)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은 야곱의 이름이기도 하고, 나중에 그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배경 및 의미
이 문구는 야곱이 그의 형 에서와 화해한 후 세겜 근처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장면에서 나옵니다. 이 표현은 야곱이 자신의 새로운 이름인 "이스라엘"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이 그의 하나님임을 인정하며 그분을 예배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야곱의 새로운 이름: 창세기 32장 28절에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를 의미합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이 야곱, 즉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이 제단을 통해 그 관계를 기념합니다.
결론
"엘 엘로헤 이스라엘"은 창세기 33장 20절에 등장하는 명칭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이는 야곱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인정하고 감사하는 의미로 제단을 쌓고 그곳을 그렇게 부르며,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기념하는 장면입니다. 이 구절은 야곱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그의 새로운 이름인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중요한 신앙 고백을 나타냅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자신을 종이라고 낮추는 이유는 창세기 27장에서 이삭이 에서에게 예언한 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에서가 야곱의 종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야곱의 행동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삭의 축복과 예언
- 이삭의 축복: 창세기 27장 28-29절에서 이삭은 야곱에게 풍성한 복을 빌며, "민족들이 너를 섬기며 열국이 네게 절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절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 에서의 복: 창세기 27장 39-40절에서 이삭은 에서에게도 복을 빌지만, 에서는 "네가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기겠으나, 네가 매어버린 멍에에서 벗어날 때에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벗어버리리라"고 예언합니다.
야곱의 행동
야곱이 에서에게 자신을 종이라고 낮추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 형제 관계 회복:
- 야곱은 형 에서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해 겸손한 자세를 취한 것입니다.
- 안전과 화해:
- 야곱은 에서가 자신에게 복수를 할까 두려워했습니다. 에서가 4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형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겸손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이는 그의 가족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 예언과 겸손:
-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예언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형제 간의 화해를 위해 겸손하게 행동했습니다.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한 부담보다는 현재의 상황에서 형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결론
야곱이 에서에게 자신을 종이라고 낮춘 것은 이삭의 예언과 관련이 있지만, 단지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 관계 회복과 안전, 그리고 형의 마음을 풀기 위한 겸손한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야곱이 에서와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진심 어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힘 센 에서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내린 축복으로 인해 에서가 받은 상황 '네 아우를 섬기리라'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에서는 아우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그것도 의식해서인지, 자신을 에서의 '종'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에게 절하면서 favor를 구한다. 에서는 그러나 동생을 오랜만에 보고는 운다.
에서가 400명의 사람들과 함께 온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서는 에서가 왜 400명을 데리고 왔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1. 잠재적인 갈등
- 복수심: 에서가 야곱에게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긴 후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창세기 27장 41절). 따라서, 에서가 4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은 그가 야곱에게 복수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할 가능성을 준비한 것일 수 있습니다.
- 힘 과시: 에서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야곱에게 자신이 여전히 강력한 존재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을 수 있습니다.
2. 평화와 보호
- 화해의 표시: 에서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온 것은 야곱을 맞이하기 위해 그의 명성을 나타내려는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야곱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일 수 있습니다.
- 보호: 당시의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조치였을 수도 있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전략적 이유
- 불확실성 대비: 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낸 야곱의 의도를 정확히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4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일 수 있습니다.
본문 상황
창세기 33장에서는 에서와 야곱의 만남이 평화롭게 이루어집니다. 에서는 야곱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두 사람은 서로 울었습니다(창세기 33장 4절). 이는 에서가 야곱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화해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결론
에서가 4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온 이유는 복합적일 수 있습니다. 그가 초기에는 야곱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실제 만남에서는 화해와 용서의 마음이 더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의 행동은 복수와 힘 과시, 그리고 평화와 보호를 위한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헤어짐이 별로 좋지 않았기에, 400명의 군대를 데리고 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너무나 큰 축복을 앗아갔다고 생각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 야곱이 받을 축복이 원래 그의 것이었음은 태어날때부터 결정되어있었다는것을 어쩌면 에서가 이해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이동할수 있었다는것은 그가, 종노릇하면서 산게 아니라 대장노릇을 했다는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멍에'에 대해 알아보자면
창세기 27장 40절에서 이삭이 에서에게 한 말, "네가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기겠으나, 네가 매어버린 멍에에서 벗어날 때에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벗어버리리라"에서 언급된 '멍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1. 종속과 굴레
'멍에'는 일반적으로 소나 다른 가축이 일을 할 때 사용하는 목에 씌우는 도구로, 무언가에 종속되거나 굴레를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에서가 그의 동생 야곱에게 종속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종속: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주면서 에서가 야곱을 섬길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창세기 27장 37절). 이 '멍에'는 에서가 야곱에게 종속될 것을 상징합니다.
- 굴레: 이는 단순히 형제 간의 지위가 뒤바뀌는 것을 넘어서, 에서가 야곱과 그의 후손들에 의해 제한되거나 억압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2. 미래의 독립
그러나 이삭의 예언은 에서가 영원히 야곱에게 종속될 것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네가 매어버린 멍에에서 벗어날 때에"라는 부분은 에서가 결국 그 종속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때가 올 것임을 암시합니다.
- 독립: 에서가 그의 삶 속에서 어느 시점에 야곱에게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가 될 것임을 예언합니다. 이는 개인적 또는 민족적 차원에서의 독립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 반란: 역사적으로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독립을 추구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이 예언의 실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3. 역사적 배경과 맥락
에서와 야곱의 후손들 간의 관계는 구약 성경 내내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 에돔과 이스라엘: 에서의 후손들은 에돔 족속을 형성하며,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과 종종 갈등을 겪었습니다. 성경은 에돔이 이스라엘에 의해 정복되었지만 나중에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려는 시도를 한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예: 열왕기하 8장 20-22절).
- 예언의 성취: 이 예언은 에서와 그의 후손들이 어느 시점에서 야곱과 그의 후손들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이를 통한 부분적인 성공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결론
창세기 27장 40절에서 언급된 '멍에'는 에서가 야곱에게 종속될 것을 상징하며, 이는 야곱이 이삭으로부터 받은 축복에 따라 에서가 야곱에게 종속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예언은 에서가 언젠가 그 종속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가능성도 암시합니다. 이러한 예언은 에서와 야곱의 후손들 간의 역사적 관계를 반영하며, 성경의 다양한 구절에서 그 성취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어려운, 아주 풀기 힘든 상황을 겪을 수 있다.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 그리고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어떠한 미래, 상황.. 그것을 두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간곡히 기도하며 일에 길이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야곱도 그러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하나님과 씨름을 했다. 그는 죽을 각오로 하나님께 매달렸을것이다. 어짜피 에서에게 죽을것이니 하나님에게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아내었다.
과거 설교말씀으로 들은것 같은데, 우리도 야곱같은 간곡함. 하나님께 간곡하게 매달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야곱처럼 죽기 살기로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기도를 해야한다고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걸 다 제치고, 자기가 할 일도 안해놓고 하나님께 매달리라는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매달린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하나님께서 안들어주실 수도 있을것이다. 그것이 만약 하나님의 길이 아니라면 말이다. 어쩌면 엄청난 절망에 빠졌을때 하나님께서 끝끝내 그 절망에서 구해주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끝까지 물어야 할 것이다. 목숨이 붙어있는한 어쩌면 헤어나올 구멍을 하나님께서 내리실지도 모른다.
사실 오랫도록 나도 좌절 중에 있어봤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죽을때까지 돌아보시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을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조금은 하나님에게 다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던것 같다. 여기에는 결단이 필요했다.
모든 것을 끝내버릴 결단.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확실한 결단이 필요했다. 나는 진심으로, 하나님에게 그 결단에 대해서 말했고, 그 결단에 대해서 계시해 주시길 빌었다. 그랬더니 어쩌면 ...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계시라 생각되는것을 느껴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그때 나는 좌절중이었고 괴로움 속에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것을 맡긴다는 생각으로 있었다.
그래서 야곱의 그 간절함이 어쩌면 이해가 간다. 그는 하나님에게 죽기살기로 매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이 '이기도록' 허락하신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 그리고 한 인간의 생명도 그냥 죽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장면에서, 챗지피티는 그 씨름이 진짜 육체적인 씨름이 아니라, 내면 속의 씨름 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내면속의 씨름이라면 어쩌면 '기도'를 뜻할 수도 있다. '고뇌'일수도 있다. 여하튼 하나님과 아주 거센 내면의 대화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과 대화를 열정적으로 하는게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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