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천사들이 평화를 선포한 뒤 20세기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신약 성경은 천사들이 평화를 "예언"했다고 하지 않고 그들이 평화를 "선포" 했다고 말합니다. 그 평화는 바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있는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계심을, 또 자신을 통해 어떤 사람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적 계시입니다.
그 "도"안에 있는 자들은 가족이 서로 닮듯 예수와 닮은 점을 지니게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들안에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의 빛이 그들 얼굴에 있으며, 영원한 생명의 기쁨이 그들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들이 가는곳 마다 사람들은 기뻐하게되고 치유되며 그들의 필요가 주목을 받게 됩니다.
묵상 질문: 내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평화의 흔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가 선포하신 평화에 나는 어떻게 참여하고 있습니까? 그 평화가 실제가 되는것을 내가 어떻게 막아서고 있습니까?
'도움이 있는곳' (The Place of Help, © Discovery House Publishers) 에서 인용했습니다.
이사야서 9:6-7 RNKSV
[6] 한 아기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모셨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7]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https://bible.com/bible/142/isa.9.6-7.RNKSV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우리에게 평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사실 그러나 이 세상을 보면 평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냥 내적 평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의 해방, 가진게 없어도 신께서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위안 같은 것으로서 평화가 생겼다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무언가 초자연적인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좋은 기적같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일어나서 사람들에게 서로 나누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돕는 마음을 전파하기 시작하고 세상이 좀 더 이타적이고 조금이나마 살기 좋아졌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근데 나는 기적같은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 불교같은 종교에서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파하고 서로 돕고 좋은일을 장려했던게 그 예이다. 불교같은 경우에는 모든 사람에게 불성이 존재해서 모두가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그것이 기독교의 천국에 대응된다. 만약 기독교의 역사도 기적이라고 하려면 불교의 역사도 기적이라고 불릴만 하다. 둘 다 이타적이었고 인류에 크게 기여했다.
사실 ,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마음이 약하고, 유혹에 쉽게 넘어가서 하나님께 죄를 많이 지었다. 하나님께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잘못한 일을 반복하고 또 하고 또 했다. 거짓말같은것들 말이다. 나는 거짓말을 어릴때부터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냥, 내 마음과 다르게, 더 귀여운척 하고, 더 착한척 하기 같은것들 말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귀여운 애로 소문나기도 했는데, 그건 다 연기였다. 사실 진짜 나는 모든것에 염증이 났고, 별로 유머를 즐기지도 않으며 친구들이 귀찮았는데. 그런데 친구들에게 미움받는것은 또 무서워서 , (거의 영혼의 죽음처럼 느껴졌던것 같다. 남에게 미움받는다는것이) 나는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재밌고 발랄한척 연기를 했다. 사실, 더 깊은 죄와 거짓말이 있는데 그건 차마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나의 마음이 준비가 안되어있어서 그냥 안쓰겠다. 그런건 비밀글로 넘기겠다. 여하튼 나는 하나님께 죄송하다면서도 사실은 죄책감을 덜 느낀건지, 아니면 유혹에 너무 약했던것인지 하나님께 떳떳하지 못한 일을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을 믿어도 '평온함'이 적었다. 늘 상 죄책감에 하나님이 나에게 언제 벌을 내릴지 두려웠다. 그렇게 두려워 하면서도 나는 잊고, 또 잊고 거짓말을 했고 말이다. 여하튼 결론적으로 나는 하나님은 '벌을 내리는 하나님'이라고 강렬하게 내 마음속에 이미지화 되었다. 사실, 뭔가 나쁜일이 일어날때마다 하나님이 벌을 내린거라고 판단했는데 어른이 되어 생각해보니, 그것은 잘못된일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하나님이 내가 정말로 변하길 바래서 일일히 나쁜일을 보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람들 모두가 벌을 받는것이 아니라, 살다보면 나쁜일들은 저절로 찾아오고, 그걸 잘 받아내어 이겨내고 넘기고, 잊는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겪은 나쁜일들은 어쩌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게 아니라 그냥 우연히 찾아온 나쁜일들이었을 뿐일 수도 있음을 깨닳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게 좋은것인지는 또 모르겠다. 내가 나쁜일을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신다면 그건 가장 무서운 형벌일테니까.
여하튼, 이제까지 나는 내가 벌을 받는다는 느낌이 강했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평온을 얻는다는 생각을 잘 해본적이 없던것 같다. 지금도 어쩌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나는 자기 객관화가 잘 안된 사람이라서, 사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내 생각에 대한 자신감을 잃은 탓도 있고. 여하튼, 그러나 나는 최근 마음에 변화를 얻었는데,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보자는 결심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이 중구난방으로 바람이 이리저리 마음대로 다니듯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는것도 깨닳았고, 그래서 좀 더 무게감 있는 생각들을 추구해보자고 결심한 터이다. 그러면 신앙에 대한 내 지식이나 지혜도 좀 더 깊어질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사실, 믿음은 지식이나 지혜로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과연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과연 나 스스로 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내가 아는 한 내에서 노력해보자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심하고 하나님께는 이렇게 기도할 것이다. '이제 다른 사람이 되어보겠으니,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답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솔직히 외로운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를 어색해 하는 사람이라서 사실 어릴때부터 하나님과 대화를 많이 하고는 했다. 어떻게 보면 나 혼자서만 대화하는 것이지, 무언가 답을 딱히 받은것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닌 '진정한' 대답을 구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도 그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오는 '평안'이란것을 느껴보고 싶다.
요즘, 내가 하나님께 메세지를 받는것인지 아니면, 그냥 떠오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거라고 믿고 싶다.) '힘을 빼라'는 생각이 난다. 그리고 몸의 긴장을 풀고, 나 스스로에게 쉬는 시간을 주면서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 상태가 되어보자고 생각하고 있다. 그게 정말 필요한것인지 모르겠지만, 한번쯤은 '힘을 빼는것'도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불교의 '알아차림' 명상에 대해서 책을 읽었는데, 그것에 따라 마음의 번뇌를 소멸시키는 일을 해볼 예정이다. 아니, 이미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15분 정도 투자해서 하는데, 뭔가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참 좋다.
여하튼, 나도 '평안'을 얻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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