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에는 너무나 좋은 속성이 있지만, 끔찍한 속성도 있습니다. 성령의 빛이 하나님 없이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던 삶의 개인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삶은 그 순간 지옥이 됩니다. 빛은 혼란과 재앙을 불러옵니다. 빛이 찾아오면 어둠은 두려워합니다. 이단들은 문명의 개입이 아닌, 하나님께 진실로 다가서는 형제와 자매들과 같은 주님의 증인들에 의해 무너집니다.
우리 하나님은 성령께 인도받아 살아가는 사람의 눈을 양심의 상징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빛으로 계신것 처럼, 우리가 빛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눈은 집중할 것이며,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올바른 관계로 자리잡기 시작되고, 모든 것들이 완벽히 조화로워지고 또한 단순하면서도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성찰 질문: 주님께서 나에게 빛으로 혼란과, 노하게 하는것, 부정직한 것을 밝히 보게 하신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 그러한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하고 평화로운 조화의 것들로 바꾸실 수 있을까요?
'너를 보내노라', '산상수훈 공부' (So Send I You and Studies in the Sermon on the Mount, © Discovery House Publishers) 에서 인용했습니다.
요한일서 1
성찰 질문: 주님께서 나에게 빛으로 혼란과, 노하게 하는것, 부정직한 것을 밝히 보게 하신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 그러한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깨끗하고 평화로운 조화의 것들로 바꾸실 수 있을까요?
오늘의 QT는 심리학(?) 적으로 본다면 이렇게 바꿔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남들보다 더 '도덕적이게 산다는것'은 '더 많은 부담을 지니게된다'.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길을 따라 '좁은길'을 걷게 된다. 그렇게 된다는것은 남들보다 더 양심에 따라 살고, 선의 길을 따라 살며, 많이 베풀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게되는것이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비기독교인들도 선량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도 똑같이 한다. 남들보다 더 선하게 산다는것은, 노력을 필요로하는 일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분명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생각도 깊이할것이고, 나의 욕망보다는 모두의 이익을 실천하려 할것이고, 힘든 가운데서도 남을 도우려하는것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모난돌이 정맞는다고, 다른 사람들보다 착하게 사려는 신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에게도 이용당하는것 같기도 하다. 요즘 세상에서는 착하게 사는게 '손해'라고도 하기도 하는것 같다.
성경에 따르면 사탄들이 신앙을 지닌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될 수 있다면 믿음을 가진자들도 넘어뜨리려할것이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따르면, 사탄들이 정말로 몰려들어서 믿음을 넘어뜨리려고 한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사탄이 달려들어서 넘어뜨리려 한다는것이다.
이는 착하게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살기 더 어렵게 만든다.
이때,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인들, 그러니까 '내가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나에게 큰 상을 내리시겠지'하고 생각하던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다 쓸려나가게 되는것 같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상을 내리는것을 바래서 착한일들을 했는데, 오히려 나쁜일들이 나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이 약한, 혹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믿음을 잃거나, 하나님에게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나는것이냐고 매달리게 된다.
내 생각에는 , 착한일을 해서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 했던 사람들을 사탄들이 가만히 내버려두어야 오히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탄생되는것을 막는일인것 같다.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인에게 사탄이 만약 공격해서 그 사람이 진정한 믿음이란, 어려움 가운데서 발하는것임을 알게되어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게된다면, 사탄으로서는 실패가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볼때 사탄들도 쓸모가 있다고 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나 또한 처음에는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에게 나쁜일이 도리어 많이 생기는것이 의아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솔직히 나는 우울증이 낫지 않아서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성령떄문인건지, 아니면 그냥 나의 소심한 성격때문인지 모르겠지만 , 나는 나름 예의를 지켜서 생활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될 수 있는한 착하게 살자... 라고 생각은 가지고 있는데, 내가 내 자랑을 하려는게 아니라, 정말로 성령님이 내 안에서 나를 조종(?)하고 계시거나 혹은 내 성격이 소심해서 안전하게 살기 위해서 착하게 살자고 생각하던가 둘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들보다는 좀 더 착하게 살자고 생각하면서 내가 드는 생각이, 정말로 착하게 살면 손해가 많다. 그리고 내가 착하게 살면서 왠지 사람들이 나쁜점들이 눈에 더 잘보이는것 같다. 분명 이웃을 볼때 사랑의 눈으로 봐야하겠지만, 남들한테 함부로 대하는 사람,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더더욱 낯설고, 악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그 속의 악만 미워하라하지만, 나는 어느새 악과 사람을 같이 미워하게 된다. 분명, 믿음이 강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랑으로 허다한것을 덮을 줄 아는 거듭난 사람이라면 악행을 하는 사람들도 사랑으로 용서하고 포용하겠지만, 나같이 연약한 사람은 악한 사람들이 밉고 심지어 두렵기까지하다. 왜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는것을 내버려 두시는가. 왜 악한 사람들에게는 벌을 내려서 죄에서 돌이키게 하지 않으시는가. 분명 성경에서는 악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각자 정욕대로 행하게 내버려 두신다고도 하셨지만 적어도 착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런 악한 사람들로부터는 지켜주어야 하시는것이 아닌가 하고 화가 날때도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나님을 믿는것은 고통이야'라고 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울증이 한창 심각해졌을때였다
솔직히 하나님이 악신이 아니신가까지 생각했었다. 혹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생각도 한것 같다. 정말이지, 하나님은 나에게 무관심하셨던것같다. 어떤 대답도 없었고 오로지 저주만 만연했던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달라졌는데, 그건 내 느낌에, 하나님꼐서 나를 버리셨거나 나를 가지고 노시는 중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내가 '항복'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것 같다. 사실 내 성격이 외골수라서 좀처럼 한번 정한 뜻은 굽히지 않는 타입인데, 나는 '하나님이라면 선하셔야 하는게 아닌가. 근데 왜 자꾸 저주를 보내시느냐' 라는 생각을 굽히지 않던 차였다. 그런데 어느날부터는 너무 힘들어서 '이제 뭐가 뭔지도 모르겠으니 절 죽이거나 살려주세요'로 바뀌고 어느날은 명언을 핸드폰 화면을 볼때마다 보여주는 앱을 우연히 다운받게 되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명언들이 마치 하나님이 주는 메세지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이 나를 속이는건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대답을 해주시는건지 알수없으나 뭐든 상관없다. 하고 생각하며 명언들을 하나님이 보내주신것이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반신반의하면서 믿기 시작하자 하나님이 마침내 나에게 대답을 해주는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하고, 점점 안개가 걷히는듯하면서 나는 뭔가 진정한 믿음이라는것에 대한 윤곽을 , 아니 체험을 하기 시작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겪은 고통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담금질 하신것도 아니다. 내가 겪은 고통은 그냥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욕망을 내가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악의에 의해서 고통받았다고도 생각되지만 어쨌거나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어리석었고,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고집, 아집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 스스로 나를 어둠의 구렁텅이에 집어넣은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다. 무언가 '운명'이라는것이 느껴진다. 내가 겪은 고통들은 나를 사망에 이르게까지 할수도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하나님을 욕하고 믿음을 버릴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위험한 지경까지 갔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작은 힌트를 주셨고 반은 운명, 반은 나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아직 내가 완전히 하나님꼐 돌아간건 아니고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는 생각이다. 나는 아직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서지 않았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이란 어려움 가운데 나오는것이며, 내가 그것을 체험했다고 느끼는 중이다. 나보다 더 깊은 믿음을 지닌자들은 나보다도 훨씬 어려운 가운데에서 일어나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버려왔겠지. 돌이켜보니 나는 오히려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동안 어려운가운데서 내가 이렇게 어리광을 피울수있었던것도 축복이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내 어리광을 받아주고 있었던것일까. 그동안 나는 정말 어린 믿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런 꺠닳음이 왔다. 그리고 감사함이 자라나면서, 내 마음이 가장자리부터 점점 치유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희망도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마음 속 깊은데에서는 슬픔과 분노가 단단히 자리하고있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 강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생겼다. 이전에는 이렇게 마음이 단단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나는 정말 무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것같다. 그러나 지금은 약간 단단해졌다는걸 느낀다.그래도 모자라지만 말이다.
그러니 혹시 지금 하나님을 믿는게 고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계신다면, 그것은 옳다고도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고통을 이겨냈을때에, 반드시 나의 성장이 있음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니체의 유명한 말,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라는 말이 이런때에 와닿는것 같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주는 말을 많이 한 사람이다.
부디 이 세상을 이겨내고 천국의 자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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