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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version 묵상

오늘의 QT 인간은 하나님 앞에 온전할 수 있을까

by one_soul 2024.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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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에 투영된 평화는 우리가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께 우리 마음을 향하도록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상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면 우리 마음은 우리 자신에게만 향해 있을 뿐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 수 없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인해 마음이 고통스럽고 갈등되십니까? 믿음의 돌덩이들을 수없이 헤집고 난 후에도 여전히 마음에 평화와 기쁨, 안식을 발견하지 못한 채 황폐한 상태이십니까? 그렇다면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의 흔들리지 않는 굳은 마음을 받으십시오. 위에 좌정하시며 전쟁과 고통, 온갖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주님께서는 평안 가운데 다스리고 계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는 먼저 불순물을 제거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앞서 성령께서는 무엇이 불순물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묵상 질문: 자신만 생각하는 입장에서 말하는 평화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염려되는 생각들을 제거해야 할까요?

'크리스천 훈련', '하나님의 문을 두두리다' (Christian Discipline and Knocking at God’s Door, © Discovery House Publishers)에서 인용했습니다.

 

 

 

레위기 26

6내가 땅을 평화롭게 하겠다. 너희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잘 것이며, 아무도 너희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땅에서 사나운 짐승들을 없애고, 칼이 너희의 땅에서 설치지 못하게 하겠다.
 
 
 
 

 


 

묵상 질문: 자신만 생각하는 입장에서 말하는 평화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염려되는 생각들을 제거해야 할까요?

 

 

이번 QT를 읽으면서는 드는 의문이 과연 사람이 아무런 문제없이,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향해 고개를 향할 수 있을까? 즉 하나님 앞에 온전할 수 있을까? 이다. 어릴적의 나는 내가 너무 착하다고 생각했던적이 있었다. 오늘 하루를 돌아봤을때 단 하나의 나쁜짓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자랑을 했었다. 참으로 어릴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뭔가 평온함을 느꼈는데 오늘의 QT에서 말하는 평온이 과연 그것과 비슷한 것일까? 어릴적에는 이런저런 걱정도 없이 그냥 '오늘은 나쁜짓을 하나도 안했어!'하고 만족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보니까,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도 많고, 또 내가 지금 믿는 신앙의 깊이도 얕고, 그동안 죄도 엄청 지었고, 또한 무지에 대한 죄도 있고 하나님을 향해서 내가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는 처지에 있다고 나는 생각되는게 있다. 

 

그런데 최근 생각하기를, 나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것들을 보려고 하고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무리하다가 뭐가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것이다. 

 

어떤 동영상을 우연하게 보았다. 투명한 물컵에 흙들이 들어가자 흙탕물이 되었다. 그러자 동영상 속의 여자는 그 흙탕물에서 흙들을 하나하나건저내는걸 보여주면서 '나쁜일들을 하나씩 없앨 수도 있죠' 그런데 곧이어 여자는 다른 물통을 가져다가 흙탕물이 된 물컵에다가 붓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러운 흙탕물들이 저절로 다시 맑은 물로 채워지면서 깨끗해졌다. '그냥 다른 좋은것들로 채우세요' 라고 여자는 말했다. 하나하나 나쁜것들을 제거하지말고 그냥 좋은것 하나로 나를 대체하면 더 쉽구나 생각하게되었다.

 

우리 인간은 아마도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의 부분만을 본다. 하나님께서는 모든것을 무한하게 보시지만, 우리 인간은 작은것의 작은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너무 모든면을 보려고 하면 그것은 무리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협업이 필요하고, 겸손함이 필요한 것 같다. 너무 나 혼자 끌어안으려 하지 말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누가 이런 의견을 가지고 있느냐, 누가 저런 의견을 가지고 있느냐 논의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야하는것이다. 

 

나의 문제도 그러한 것 같다. 나는 나혼자 너무 많이 끌어안으려 한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자만이었던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것은, 모든것에 완벽하거나 순수한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단 하나의 마음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의 한계로 인해서, 우리 인간은 완벽한 지성, 완벽한 지혜를 가질 수 없으나, 우리의 다른 것들을 오히려 버리고 마음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채우면서 그 하나의 일에만 마음을 다하면 그로서 된것인것이다. 나쁜것들을 제거하려고 많은것들을 일일히 하려하면 힘들다. 그러나 사랑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불순물들이 사라진다. 위에서 말한 깨끗한 물을 그냥 부어버리는 일이다.

 

우리 기독교가 가난하고 못배운자, 병든자들을 위한 종교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배우지 못했고, 깊이 생각하는 법도 모르고, 결핍되어서 넓은 마음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 더 큰 힘이 되어주신다. 그것은 그들에게 무언가 더 완벽해지거나, 더 깊어지거나, 더 넓어짐을 요구하시지 않는 사랑이다. 그냥 그들에게 평온이 임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우리 기독교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나는 바리세인처럼 더 깊이 알려고 했고, 더 많이 공부해서 내 신앙을 높이려 했으니 순서가 바뀌었던것 같다. 본질은 사랑인데 이론을 중요시했다. 나의 부족함을 일일히 끌어올리려했던것 같다. 그냥 나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발하기만 하면 됬는데.

 

사실 어릴때엔 난 이미 사랑이 더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울증이 오면서 내가 잘못생각했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론도 봐야지... 하고 생각하다가 본질을 잊고 이론을 더 중요시하게 된 것 같다... 경위가 그러하다.

 

여하튼 이제 본질에 더 집중하고, 어서 빨리 내 우울증도 털어버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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