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수님의 평화를 얘기합니다만 진정 우리는 그 평화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예수님의 일생에 관한 얘기를 읽어보세요. 나사렛에서 30년 동안 조용히 순종하신 것, 3년간 기적을 행하신 것, 중상을 입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등이 찢기시고 증오를 받으시며 그는 모든 걸 견뎌내셨습니다. 우리가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이었을 테지만 예수님의 평화는 방해받지도, 또한 침해받지도 않았습니다. 그 평화는 하나님이 천국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실 그런 평화였죠, 우리가 익히 알던 평화가 아닙니다.
바쁜 일상 속, 생계를 위해 하는 일, 육신의 삶으로 주어진 모든 조건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 즉 "나의 평화"를 설계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예수님의 불굴의 평화로움이 우리 모든 사사로운 삶 속에까지 스며들었습니다.
당신의 손길에는 여전히 전능하신 힘이 있습니다. 저를 만지소서, 주님, 제가 살아 숨 쉬는 평생 당신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소서.
묵상 질문: 나는 비방과 증오의 공격을 견딜 수 있는 그런 평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나의 평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룩과 성화', '하나님의 문을 두드려라' (Our Brilliant Heritage and Knocking at God’s Door © Discovery House Publishers)에서 인용했습니다.
요한복음서 17
묵상 질문: 나는 비방과 증오의 공격을 견딜 수 있는 그런 평화를 가지고 있습니까? 나의 평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의 큐티를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온다. 나는 아마도 상처를 입기 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것 같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수많은 상처를 받았으며 (별거 아닌 일에도) 그 상처들을 지금까지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글을 읽으면서 뭔가 뱃속이 아파온다.
뭔가, 나는 비굴하게 살지 않았을까. 상처가 난 나를 움츠리게 하고 상처입지 않도록 벽을 세워두고 방어를 하면서 살아온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상처입는것을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는건 아니지만, 나는 좀 지나치게 상처에 민감한 감이 있다.
휴... 그러나 이런 나의 상황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22살이면 성격교정은 물건너 갔다는 밈이 있다. 나는 그 나이에서 훨씬 지났으니 훨씬 물건너 갔을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지금처럼 움츠러든채 살고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용기를 내거나 나 자신을 빌드업 해야할텐데, 그 방법이란 무엇일까?
하나님을 더 강하게 믿으면 용기가 솟아오를까?
그러나 강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게 아닐까.
믿음은 행실에서 나온다라고도 하지만, 순서가 어떻게 되는것일까. 하나님이 먼저 믿음을 주셔야 내가 행실을 할 수 있는걸까, 아니면 믿음없이 행실을 행하면 그제서야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는 것일까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일단 내 경험에 따르면, 나는 믿음이 없었으므로 행실을 잘해보려고 한 경험은 있는데, 그 행실이 사실 잘못된 행실이었던것 같다. 나는 약간 칭찬받으려고 착한일을 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정말 선한 의도가 아니라, 내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 좋은일을 하면 하나님이 선물을 주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행한 선한 행동은, 진정한 선한 행동이 아닌것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내가 행해도 하나님께서는 강한 믿음을 주시지 않았던것 같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는 한동안의 폭풍우를 거친 뒤에, 약간의 발심의 마음이 생겨서 아무런 마음이 없고 철없던것에서 조금은 나아져서 정말 안좋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법같은것도 배우고 진정한 믿음이란 어려움가운데서 믿는 힘이라는것도 알게된것 같다. 돌이켜보면 내가 겪은 폭풍우는 하나님께서 나를 단련시키려고 보내신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나는 조금 희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혜가 많은 타입은 아니라서 뭐가 뭔지 모르는 게 많지만 소망은 가져볼만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더이상 움츠린채 있지 않겠다고. 용기를 낼 수도 있다고...
요즘 깨닫는것인데, 신앙이란것, 그리고 마음의 성장이라는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하고 깨닳는다. 난 어릴때에는 그냥 내가 의무적으로, 이건 이렇게 지키자 하고 결정하면 내가 짠 하고 성장한거라고 쳤던것 같다. 사실 지금도 정말 마음이 바른 사람들은 그런식으로도 마음이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더럽혀져서 죄많은 인간이라서 더이상 어릴때처럼 쉽게 내 마음을 성장시키지 못하는것 같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없는자는 있는것마저 빼앗아 있는자에게 줄 것이다라는 말이 이뜻인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타락했고 없는자가 되었는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있는것을 빼앗아 타인에게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자에게도 기회를 주셔서 조금은 나에게 남겨두셨고 나는 그 조금 남은것으로 어떻게든 다시 되살아나야한다는 느낌이 온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불태워버리실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너무 무섭게 생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들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고, 자신을 온전하게 하려고 노력해야한다고도 쓰여있는것이 마음에 걸린다.
여하튼 나는 타락한 사람이라서 평화로운 상태에서는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말했듯 '보지 않고 믿는자는 더 복이 있을것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는것 같다. 나는 봐야만 믿는 사람, 경험해봐야, 고통을 겪어봐야 믿는 사람인듯 하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통을 보내시는것이고 말이다.
그러나 이번 해에는 좀 더 노력해서 꼭 '보지 않아도' 믿음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으면 한다. 좀 더 기록도 많이하고, 이 블로그도 글을 많이 써서 부흥시켜 봐야겠다.
이런 마음을 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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