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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 평화 성령 안에서의 삶 11일째 -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by one_soul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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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평화로운 일이 아닌 충격적이고도 압도적인 일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영역 속으로 태어날 의향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금 내가 속한 영역에서 즉시 일어날 혼돈에 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들어왔던 법칙은 가려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들어오심은 이전에 내가 모든 것을 바라보던 방식들에 있을 절대적 혼돈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의 아래위가 뒤집히는 것입니다. 이전의 질서와 이전의 평화는 떠나가야 하며 우리는 이전 수준의 평화를 되찾을 수 없습니다.

사탄이 악마의 영감을 통해 영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릴 때, 그들은 근심 되기는 커녕 깨끗한 세속에 자리를 잡고 "평화"를 누립니다. (cf. 시편 73)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왕국을 다스리시기 전에 우선 이 거짓된 통치를 무너뜨리셔야 합니다.

묵상 질문: 나는 평안을 얻기 위해서 어떤 "혼돈"을 지나가야 합니까? 이전의 질서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방해"가 필요합니까? 어떤 "거짓된 통치" 가 무너뜨려져야 합니까?

'주님같은 일꾼' (Servant as His Lord, © Discovery House Publishers) 에서 인용했습니다.



‭‭마태복음‬ ‭10:34‭-‬39‬ ‭KRV‬‬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https://bible.com/bible/88/mat.10.34.KRV

 

마태복음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www.bible.com

 

 

 


 

 

사실, 하나님을 믿으면 더 좋은 일이 일어나야하는게 맞겠지만, 그것은 좀 시간이 흐른 뒤라는 것을 깨닳았다.

일단 하나님을 믿고나면, 그 순간은 좋은일이 생긴다 . 잠깐 동안의 기쁨.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 기쁜 시간을 주신다. 막 열정이 피어나는 때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를 버릴 수 있을 것 같고,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조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뭔가 힘든 일들이 닥치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했던 방식의 고난이 아니다.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1천배는 더 비참하고 힘든 고난이 온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 그곳을 찔러 들어오신다. 하나님의 연단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단을 이겨내야만 하나님께서는 무언가 값진 것을 주신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천국의 지식, 보물. 모든 그리스도인이 겪는게 이런 순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나님을 믿으면 반드시 연단이 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은 거듭나야하기 때문이다. 믿는자에게 오는 사탄의 시험도 강력하다. 사탄의 시험은 우리 인간의 가장 약한 곳을 건들여서 파고들어온다. 이 시험을 당하는 동안, 고꾸라지는 사람이 참 많을것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사람들이 고꾸라지기 시작하면 하나님에게 원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신께서 계시기는 하느냐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나를 배신했다면서 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시험을 당하면서 인내하고 더 나아가 일부러 고난을 감수하면서 연단을 받아내야 한다. 다들 힘을 내시길 바란다. 그리고 그 연단의 끝에는 반드시 천국의 선물이 있다는 것을.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절대로 잊어선 안되는것은 하나님께선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길 원하시는것은 그냥 복도 아닌, 아주 커다란 복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기도로 무언가 자신의 욕망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신앙의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이다. 일명 기복신앙인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기복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소원을 빌고자, 그것이 이루어지고자 하나님을 믿는것은 초보이다. 진정한 신앙자는, 세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따르고자 자신을 버리는 사람이다. 이는 무슨 뜻이기도 하냐면, 사실 기독교는 쉬운 종교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종교에서도 신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듯이 기독교도 그런게 필요하다. 온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 자신의 자아,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쫓는것.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고군분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도 우리 기독교는 비교적 다른 종교에 비해서는  '쉬운 멍에' 이기는 하다.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다른 종교보다는 수준이 낮은편이라고 나는 알고있다. 불교같은 경우에는 몇겁(셀수없이 많이)을 환생해야 극락정토로 가고 해탈을 할 수 있다고 하는데 , 기독교는 믿고서, 범죄를 저질러도 일단 천국에는 들여보내준다. 범죄를 예시로 든것은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예수님을 일단 믿으면 그런 죄인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사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범죄자로 하여금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자신의 범죄에 걸맞는 대가를 치르게 하고, 그리고 그가 회개하여 천국에 어울리는 자가 될때까지 치실것이다. 범죄자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살면서 떵떵거렸다면 죽어서라도 그 대가를 치루게 하실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공정하시기 때문이다. 물론 무한한 자비의 용서도 있으시다. 그러나 그 용서는 결국 천국에 입장하게 해준다는것이지, 그 사람이 지은 죄를 아예 없었던것처럼 하시는건 아니라고 생각된다. 찰나의 인생을 생각하면 잠깐의 연단은 우리가 못견딜것도 아닐것이다. 영원한 지옥에 비해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오신 이유에 대한 성경 말씀이 마음에 박힌다.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사실 세상은 늘 변화할때마다, 그러니까 혁명이 일어날때마다 어떤 균열이 일어왔다. 예수님또한 이를 말하시는 것일것이다. 실로 예수님의 말씀은 통찰력이 있다. 새로운 무언가, 더 높은 무언가가 나타날때면, 기존의 것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면서 잠깐동안의 무정부 상태가 일어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나서는 잠시동안 이 세계에 혼란이 있었을 수 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그것을 이루러 오신것이다. 바로 교회의 서막을 여셨다.

개인적 차원에서 말하자면 나는 엄마와 자주 싸우는 편인데 나는 정말 반항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방식이 싫었던 사람이었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말하신, 서로 불화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냥 개인적으로 말이다. 지금은 사랑으로 약간 이겨냈지만...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서로 불화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지키고자 서로 싸운다는 뜻이다. 그냥 서로 안맞고, 갈등이 빚어지는게 아니다. 가족들이 모두가 함께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바른길을 걷는다면 불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다른 누군가가 하나님의 뜻대로 걷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비로소 갈등이 나타난다. 하나님을  더 잘 아는자가 가족에게 바른길을 종용하다보니 불화가 생기는 것이다.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그래서 가족에게 하나님의 의를 표출하다보니 싸우게 되는 것. 그러나 그 싸움도 결국에는 사랑으로 합하여지는 그런 과정. 서로 위로하고 더 사랑하며 무엇이 옳은가를 알아내가는 과정. 그런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실로 통찰력이 있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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