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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 : 평화- 성령 안에서의 삶 12일째

by one_soul 2024.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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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와 의논 할 때, 모든 혼란은 사라집니다. 그 안에는 혼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걱정은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의 지혜와 확실성을 우리가 확신 할 때 모든 것은 괜찮아 질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딤후 2:13). 천사들의 노래는 여전히 참됩니다.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내적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그의 뜻의 성향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러한 방식을 따르지 않고,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만 흘러간다면, 가혹하고 쓰라린 인생을 살게 될 것이며, 언제나 불안하고 불행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평안의 길이 아닙니다.

묵상 질문: 나의 평안을 방해하는 혼란은 무엇입니까?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대는 하지만 나 자신은 실천하고 싶지 않은 "평화의 제스처"는 무엇입니까? 아직 내가 하나님의 기쁨에 순응해야 하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크리스천 훈련' (Christian Discipline, © Discovery House Publishers) 에서 인용했습니다.
 
 
 

 

시편 4

7주님께서 내 마음에
안겨 주신 기쁨은
햇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더 큽니다.
 
 
8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제스처

 

나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남들이 해주기 원하는것. 

그것은 아마도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봐주는 것일것이라 생각된다. 

 

휴.. 그러나 나 조차도 타인에게 그렇게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일이다.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람의 얼굴 표정, 말, 단어 선택 등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해보고는 한다. 일부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때부터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사람들을 판단해왔다. 그리고 사실 어느정도 충분히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필요한 만큼은 모두 알아냈다고. 사실 어렸을적부터 나는 사람들을 관찰을 많이했던것 같다.(이것도 무의식적이었다.)  일부러 내가 그런게 아니고, 저절로 사람들의 사소한 것들, 사소한 행동들이 기억에 강하게 남아서 저절로 생각이 났고 그런 기억들을 바탕으로 이 사람은 훗날 어떤 일을 저지르겠구나.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겠구나. 이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겠구나... 같은것들을 내가 속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그게 맞아떨어진적이 많았던 것이다. 그릐고 그렇게 내가 맞았다는게 반복될 수록 나는 더더욱 사람들을 판단했던것 같다. 그런데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같은 줄 알았다. 행동이나 말로 이 사람의 미래를 알 수도 있겠구나. 그 사람의 과거도 알 수 있겠구나.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상대를 판단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기억하는게 아닐까. 그럼으로써 예의, 매너가, 세심함이 생기는것이 아닐까...

 

그러나 어느날 어디선가 배우기를, 사람들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더불어서 내가 훌륭함을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좋은 선의를 나타내는 것들을 보게되었고 나의 눈을 맹신해서도, 믿어서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나의 식으로 그렇게 사람들을 판단하다가 그 사람의 한계를 예단해버리고 대한다는 것을 깨닳았다. 그것은 거의 역할놀이같은것으로 이어졌던것 같다. 이 사람은 이럴테니까 나는 이렇게 말해야지. 이사람은 자신만만하구나, 난 그런사람이 좀 부담스러우니까 가까이 가지 말아야지. 나의 이러한 겉모습 판단은 생각해보니 그다지 좋은게, 생일선물 살때 뭐 좋아할지 골라주는것 외에는 장점이 별로 없다는것도 깨닳았다. 아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는 내가 속깊은 친구나 세심한 친구로 이미지가 남기는 했던것 같다. 근데 나로서는 그다지 이득이 없었달까... 그냥 사람들에 대한 기억력만 늘어나는 것...

 

그리하여, 나는 바뀌고자 했다. 나는 사람들을 볼때, 같이 즐기는데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기억에 들어와서 나에게 뭔가 판단을 저절로 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무시하기를 연습하고, 그 사람의 장점을 더 많이 보고, 함께 무언가를 하는것에 더 집중하니까 사람들과 친해지기 더 쉬워지고 또 나도 편했다. 솔직히 사람들을 판단할때 장점보다는 미숙함이 더 많이 보였으니까. 나도 미숙했지만 그래서 늘상 소극적이었는데 나중에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미숙함을 느끼면서도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되긴 했다. 여하튼 나는 편해졌다고 생각한다. 나의 변화가 더 좋았던것이다.

 

그런데 그건 어렸을때의 이야기이고 어른이 되어서 보니까 사람들이 점점 내가 어릴때 했던, 사람들을 판단하기, 가려 사귀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것 같다. 내가 어릴때 안좋다고 생각했던것, 그리고 어릴때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라고 들었기에 사람을 판단하는것은 '나쁜것'이라고 배웠던것을 커서 보니 어른들, 친구 또래들이 하는 것이었다. 마치 그게 더 '상위'의 사교방식이란듯이. 어릴때 내가 좋지 않은 습관이라 생각했던것을 다 큰 어른들이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것은 역행이 아닌가? 그리고 거기에 거부감이 생겼다. 그건 나쁜것인데 사람들이 왜 하는거지? 하는 의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매너가 좋은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 사람들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그래서 장점을 알아내고, 더 섬세한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로선 그런 사람들은 정말 취향 저격이었다. 

 

그러나 단지 ' 이 사람이 나와 격이 맞는가?'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더 많은것같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나쁘단 기분이 든다. 어릴때 내가 그랬었고 죄책감을 느꼈었기 때문인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다들 약한점이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남을 판단하는 본인도 딱히 더 뛰어나지 않다고 느끼는 점이 많았다. 진정한 왕은 격을 따지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왕은 쿨하다. 남을 판단하고 격을 따지는 애들은 남을 판단할만한 자질을 갖지 못한게 대부분인것 같다. 그저 자기가 고상하다 생각되는걸 흉내만 내는것이지.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벼가 익지 못한것 같다.

 

나는 매너 좋은 사람을 좋아해서 매너 좋은 사람들에게서는 (가식이 아닌 진짜로 매너가 좋은 사람) 그 사람이 판단하는게 '섬세함','다정함'이라 느끼지만, 단지 부정적인 전제로 사람들을 가려 사귀려고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만심', '교활함'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조금 짜증나게 되었다. 

 

사실 어른이 되면서 그런 사람들을 아주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내가 그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고 싶다. 겸손히 낮은 자리에서 서서 모든 사람에게 예의바른 매너 좋은 사람만 만났으면 한다.

 

그리고 나도 남을 판단하지 않고, 모두에게 골고루 다 잘 대했으면 좋겠다.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까지 평등하게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한번 결심을 해본다. 악은 선으로 이길지니, 악에게 물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모두가 지금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더라도, 올바른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깨끗한건 아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나도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것도 많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해봐야겠다... 자신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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