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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 : 평화 - 성령 안에서의 삶 9일째

by one_soul 2023.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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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사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사람들은 그분안에 원할만 한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죄인의 마음에 이르실 때,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께서 왜 성육신을 하셨어야 하는지 이해 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사람이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상태는 죄에 대한 통증이나 찔림이 전혀 없고 모든 것이 행복하고 평화로울 때 입니다. 그러나 그 상태는 예수님께서 대표하시는 것들의 영역에 대해 완전히 죽어있는 상태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은 너무나 피상적이여서 "현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실질적인 편안함과 실질적인 편의와 평화에만 정신이 팔려있으며,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우리 삶의 "평형"을 무너뜨리실 때도 우리는 그가 계시하시는 것을 무시하길 더 원합니다.

묵상 질문: 왜 잘못된 곳에 평안을 두는 것이 위험합니까? 왜 "쉬운 평안"은 그렇게나 일시적입니까? 왜 편안이 평안의 적이 됩니까?

'아들을 영광으로', '구원의 심리학' (Bringing Sons into Glory and The Psychology of Redemption © Discovery House Publishers) 에서 인용했습니다.

‭‭이사야서‬ ‭59:10‭-‬11‬ ‭RNKSV‬‬
[10] 우리는 앞을 못 보는 사람처럼 담을 더듬고, 눈먼 사람처럼 더듬고 다닌다. 대낮에도 우리가 밤길을 걸을 때처럼 넘어지니, 몸이 건강하다고 하나 죽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11] 우리 모두가 곰처럼 부르짖고, 비둘기처럼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지만 공평이 없고, 구원을 바라지만 그 구원이 우리에게서 멀다.

https://bible.com/bible/142/isa.59.10.RNKSV

 

 


 

하나님이 나에게 일부러 연단하시려고 고통을 보낸다는것을 알고있다. 

어디서 듣기를 '고통은 지(知) 의 자각'이라는 말을 들었다. "모른다면 고통도 없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성장하길 바라시므로 내 인생을 완만하게 만들지 않으셨을거란 생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꼭 하나님이 나에게 나쁜일만을 보낸것은 아닐것이다.

내 인생의 나쁜일에는 내 책임도 어느정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에게 불공평하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어쩌면 더 잘 풀렸을것을 나는 그냥 힘들어서 내버려 두기도 했다. 천성이 게을러서 그렇다. 

문제는 내가 그냥 내버려 둔것도 있고 거기에 하나님이 나에게 숙제를 내미신 것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이 문제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인생의 경로에서 다 때가 있는법인데 내가 그걸 방치하고 이제까지 왔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게 아닐까 싶기도 한 것이다. 물론 자기계발서 같은데를 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시작하라고 한다. 

나도 선택지가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는 그것뿐이 없다는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지금 시작해도 나는 늘 상 죄책감에 시달릴거라는 생각이다. 영원히 죄책감에 시달리겠지...

하지만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걸 또 용서해주실거다. 그러나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불공평한것도 있긴 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좋은 환경과 좋은 머리를 주고 나는 그렇지 않은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좋은 가족을 주고 나는 그렇지 못한것에 대해서. 누군가는 긍정적인 영혼을 주고 나는 그렇지 못한것에 대해서

나는 늘 상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던것 같다. 그래서 어릴때는 노력도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더 좋게 타고난 아이들이 내 노력을 무시하는 것을 보았고, 내가 노력해도 칭찬해주지 않는 어머니. 

어머니는 자기가 아이큐가 너무 높아서 측정할 수 없었다면서, 내가 똑똑한 행동을 하면 '그정돈 당연히 해야지'라는 식이었다. '너한텐 쉽잖아' 이런 말들. 나는 그게 좋은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훗날 '이게 쉽지 않으면 내가 머리가 나쁜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도록 만든것 같다. 엄마는 내가 어느날 쉽지 않은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을때도 '너한텐 쉽잖아'를 계속 말했다. 나는 노력을 했지만 쉽지 않는 공부는 점점 흥미가 떨어지게 되었던것 같다. 그래서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해졌다.

 

난 이미 지금 평안하지 않다. 평안하지 못한지 아주 오래되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평안을 찾을 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내가 평안해질 수 있을까. 단지 해탈하는게 유일한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해탈을 추구하고 있다. 불교의 '무소유'같은것 말이다. 은근히 불교의 마음수업이 나에게 잘 맞았던것 같다. 기독교는 죄와 벌의 시스템이 너무 강하다. 그러나 불교는 죄에 대한 용서나 속죄 같은것은 뒤로 하고 그냥 지금 이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기독교는 나를 감시하는 하나님의 눈이 있지만 불교는 그런것 없이 그냥 나 홀로 평안을 지금 이순간 바로 추구하면 된다. 과거가 어땠든 죄가 사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가볍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용서해줬는지 안해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죄책감을 계속 안고서 나아가야한다.

 

그러나 사실 요즘 다시 기독교를 공부하면서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닳아 가면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죄를 내리기 보다는 용서하신다는것을 배우고  있다. 하나님이 용서를 하셨는데 나는 왜 평안해지지 못하는가. 그것은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다만 나는 구약 성서의 하나님이 징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너무 강하게 만들어놔서 아직까지 또 지금의 나의 불안함이나 고통이 하나님의 벌이 아닌가 계속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구약의 하나님도 오늘의 QT 내용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벌을 내린것이라고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 나는 정말 신학을 공부해야하려나. 정말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왜 그렇게 달라지는지 한번 나중에 공부해봐야겠다. 

 

그래,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시다. 나는 그것을 늘 잊고는 한다. 율법보다 위에 있는것이 사랑. 나는 그 사랑안에서 살아가면 된다. 걱정할 필요 없이 말이다. 불교의 교리를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기독교가 더 낫다. 나를 지켜보는 신이 있는것과 없는 것. 불교는 내가 나를 지켜보겠지만, 기독교는 신이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나에겐 그게 더 맞는것 같기도 하다. 어릴때부터 나는 나를 못믿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사랑'이 본성인것을 알고는, 좀 더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워져 봐야겠다. 너무 기죽어있지 말고, 죄책감에 빠지지 말고 날개를 퍼덕여 보아야 할 때같다. 나는 아직도 겁먹고 전혀 날지 않는 새와도 같다. 그러나 나에겐 날개가 있으며 먼저 떠난 다른 형제 자매들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날 수 있을까. 나는 겁이 너무 많다. 뭔가 확증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을 강조한다. 나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 인생에 나쁜 일들이 너무 많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내가 가는 길 마다 넘어뜨릴거라는 이제까지의 믿음이 맞는걸까, 아니면 반대로 세상의 나쁜 일들이 많아 난 계속 넘어지는데 하나님이 오히려 도와주는 중이라고 믿는게 맞는걸까. 이 믿음에 대한 문제는 내 인생의 전체를 궤뚫는 문제이다. 내 고통은 하나님이 보내시는걸까. 아니면 오히려 하나님은 현재 나를 지금 도와주고 계시며 내가 겪는 고통은 누구나 겪는 것일까. 그런데 왜, 내가 하는 일 마다 잘못되고, 나쁜일만 생기는 것 같을까. 이 문제때문에 나는 의욕이 나질 않는다. 하나님이 답을 주셨으면 좋겠다. 일단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랑으로 나에게 나쁜일들을 보내 실 수 있다. 그리고 일부러 나를 더 힘들게 하 실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묵묵히 따르는게 옳은 것이다. 그게 정말 싫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불공평하고 화가 치밀어도 말이다.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수 밖에 없다. 훗날 누군가를 돕기 위해서. 혹은 내가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하도록 하기 위해서 등등... 말이다.

 

그러나 나도 좀 평안히 살고 싶은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너무 어릴때부터 하나님은 나를 치셨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도 뻥긋할 수 없다는것도 안다. 그건 어리광이다.

 

오늘은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나게 하는 QT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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