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3
Numbers 23
민수기 24
Numbers 24
어렸을때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키신다는 저 예언이 얼마나 부럽던지.
나는 사실 어릴때 약간 따돌림을 자주 당했었다
나는 키도 작고 소심하게 생긴데다가 늘 에너지가 없었다.
또래의 애들이 막 날라다닐때 나는 뭔가 어두침침하게 혼자서 조용히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때 그리고 애들의 그 확장된 자아...나로선 꿈도 못꾼다. 나도 확장된 자아가 있었지만 그건 약간 저세상을 향한 뭔가였던것 같다.
하나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서일까, 어릴때 내가 하는 공상은 곧잘 초자연적인 힘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런데 어릴때에는 낙엽만 굴러가도 신비하달까, 바람이 정말 살아있는것 같고, 음악은 정말 천국과 연결되는것 같고, 나를 다른세계에 데려다주었다. 판타지 소설은 그 중에서도 정말 꿀이었다. 뭔가 초자연적인것, super power에 대한 관심이 나는 많았던것 같다. 속으로 그런 생각만 했는데, 나는 그렇다고 판타지 소설을 탐독하거나 음악을 탐독하거나 하지 않았다. 마음 한켠으로는 그것들은 그냥 수단이지, 또 '진실'이 아니며 만들어낸 이야기, 예술일 뿐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진정으로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길 바랬다. 그리고 나는 예술과 신앙을 분리했다. 신앙은 진짜. 예술은 가짜.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술을 통해 신앙의 일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 연결되어있고 작곡가나 작가들도 그 근원적인 무언가를 떠올리며 예술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술을 통해 신비로운 초자연적인 근원을 알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예술은 도구로서만이었다. 중요한건 예술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이었다. 어릴때 내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니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아예 어릴때부터 종교학쪽으로 진로를 잡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초등학교였을때인데 말이다.
여하튼 초자연적인것들은 자연에서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순진한 호기심이 만들어낸 환상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비밀이므로 블로그에 적진 않는다. 그것들은 나만의 비밀의 일기장에 적을 것이다. 그렇다고 뭔가 광야에서의 불기둥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내가 경험한건 아니다.
여하튼 그러한 생각들만 머리에 가득하니 나는 아마 음침한 소녀였을것이다.
지금도 음침하고 말이다...
그래도 나는 이과다. 과학적인 사고를 사실 우선으로 한다. 그러나 어느날은 그게 너무 지나쳐서 하나님도 안계실거라는 생각으로 빠지곤 한다. 그게 내 정신을 우울하게 만든것 같다. 어릴때와는 너무 상반되는 사고라서 마음이 피폐해진달까. 무의식 깊은 곳 어딘가를 메마르게 만드는것 같다. 여하튼 나는 4차원 소녀라는 소리를 많이 듣기는 하지만 이래뵈도 과학에도 관심이 많다.
여하튼 오랜만에 이 구절을 보니, 여전히 이스라엘이 부럽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이스라엘. 누군가 저주를 하려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 모든 술법위에 존재하시는 하나님. 어떤 신도 하나님을 이길 수가 없다.
하나님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어떻게 하나님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 우리 인간도 경이로운 존재이다. 우리 인간이 만들어내는 신에 대한 감수성이 나는 경이롭기도 하다. 이 땅의 동물들 중 인간의 의식에 견줄 존재가 있는가. 진화라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진화가 인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진화론을 그냥 가설로서만 받아들이는것이다.
오컬트계에서는 신은 전능한존재로서 우주 그 자체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기독교 하나님은 특별히 인간을 '사랑'하시는 신이다. 그 점도 나는 더더욱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미워하시는 게 아니라 사랑하시는 신.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중도의 신도 아니라 사랑하시는 신. 중도의 신이 아니라 선의 신. 선 그 자체이며 초월한 자. 불교에서는 중도를 지향하지만 기독교는 절대선이 있음을 말한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중도가 더 뛰어난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 일단 나는 기독교이므로 절대선쪽으로 믿어야겠다고는 생각한다. 사실 불교도, 절대선과 비슷한 관념인 중도이기도 하지만... 왜냐하면 악에서 멀어져 선으로 갔다가 그걸 초월해서 '상'을 없애고 중도에 다다르는거니까...
여하튼 이스라엘이 정말 부럽다. 나는 하나님이 안지켜주는데... 아니 지켜주나? 그러나 이스라엘처럼은 안지켜주신다. 왜냐하면 나는 이리저리 깨부서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경험적으로 안다. 피곤한 삶이었다. 이스라엘은 커녕, 평범한 사람이 부러울 정도다.
하나님을 원망도 많이 했다. 한때는 악신이라고까지 말했었다. 하나님은 악신이라고. 세상을 보면 알 수 있다고. 그렇게 말했었다.
사실 아직도 하나님이 어쩌면 악신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들기 시작한 생각은 하나님이 악신으로 보이는것은 세속적인 눈에 내가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 상황이 안좋다고 하나님을 악하게 여기는것이다. 나만의 경험으로. 어쩔땐 나만의 경험이 전부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예컨대 이 세상에서 단 한명의 영혼이라도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면 하나님은 악신이 되실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신이 되시는것이다. 수천경의 인구가 축복받고 행복한들, 내가 불우하다면 나는 하나님이 악신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버림받은자니까. 우주의 원자만큼 많은 숫자의 영혼들이 구원받았던들, 내가 지옥에 살게된다면 무슨 소용인가. 다들 하나님이 선한들 무슨 소용인가. 다수가 하나님을 선하다고 해서는 소용없다. 모든 존재가 하나님이 선함을 느껴야한다. 그래서 99마리의 양을 버리고 1마리 양을 찾으러 하나님께서는 가시는것이다. 언젠가는 모든 양을 돌보기 위해.
어릴때에는 하나님이 정말 대단해보였었다. 어릴때는 지식도 없고 순진했지만 눈은 그래도 맑았던 게 아닐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려면 정말이지, 지식같은것도 사실 꼭 필요한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깨끗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요" 마태 5장 8절.
최근 드는 생각으로는 의심을 이제 지워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내 의지로 되는게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이제 진심으로 많이 해볼것이다. 기도!
자기전에 꼭 반드시 기도를 해야겠다.
혹시 내 블로그를 보는 분은 중보기도 해주시길, "의심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라고!
'성경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9일째 QT 민수기 25장 이스라엘의 바알브올과의 결합 (3) | 2024.12.16 |
---|---|
118일째 QT 민수기 24장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발람 (1) | 2024.12.09 |
116일째 QT 민수기 22장 발람, 이방의 예언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외에 이방인에게도 자신을 계시하셨다 (4) | 2024.12.05 |
115일째 QT 민수기 21장 광야에서 놋뱀을 세우다 (1) | 2024.12.03 |
114일째 QT 민수기 20장 가데스에서 생긴일. 모세와 아론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다 (1) | 2024.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