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5
Numbers 25
민수기 25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과 음행하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바알 숭배)**에 빠지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
- 이스라엘 남자들이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과 음행을 저질렀습니다(민수기 25:1).
이는 단순히 육체적 음행뿐만 아니라, 그 여인들이 바알 숭배로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했다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였습니다(민수기 25:2).-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서는 안 되는 언약을 맺었지만, 바알 숭배에 빠진 것입니다.
- 당시 이방 종교의 제사는 종종 성적인 의식과 결합되어 있었기에, 이스라엘 백성의 음행은 단순한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영적인 배신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의 처형
- 민수기 25:6-8에서, 한 이스라엘 남자가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자신의 가족 앞으로 데려오는 대담한 행동을 저지릅니다.
- 이 장면은 단순한 음행 이상의 도발적이고 공개적인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보여줍니다.
- 이에 분노한 **비느하스(엘르아살의 아들, 아론의 손자)**가 그 남자와 여자를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 이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었고, 이스라엘에 내린 전염병도 중단되었습니다.
2. 미디안을 원수로 여기게 된 이유
- 미디안은 왜 원수가 되었는가?
- 민수기 25:16-18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미디안 사람들을 치라고 명령하십니다.
- 이유는 미디안 여인들이 바알 숭배와 음행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유혹한 주범이었기 때문입니다.
- 미디안 여인들은 이스라엘을 타락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유도하려 했습니다. 이는 민수기 31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모압 왕 발락과 미디안 지도자들이 발람의 조언에 따라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민수기 31:16, 요한계시록 2:14).
미디안과 모세의 관계
- 미디안은 모세의 장인(이드로, 또는 르우엘)이 속한 민족이기도 합니다(출애굽기 2:15-21).
- 그러나 모세가 결혼한 미디안 가문과 이 사건의 미디안 지도자들은 다른 세력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미디안 전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유혹한 특정 세력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되었습니다.
3. 미디안과 이스라엘의 관계의 변화
- 초기에는 모세의 장인과 같은 미디안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출애굽 여정 중 조언을 주며 이스라엘을 도운 적도 있습니다(출애굽기 18장).
- 하지만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일부 미디안 세력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거나 타락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적대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4. 이 사건의 교훈
- 민수기 25장의 사건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이방 문화와 결합하려는 시도는 하나님께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 이는 이스라엘의 영적 순결성을 지키기 위한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로 해석됩니다.
- 또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타락에 빠지는 과정과 그것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 미디안의 유혹은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한 것입니다.
5. 현대적 관점에서의 이해
- 미디안을 적으로 삼고, 음행과 우상숭배를 심판하신 하나님의 행동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잔혹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조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당시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는 여호와 신앙을 중심으로 결속되어야 했고, 이방 종교와의 혼합은 치명적인 위협이었습니다.
민수기 25장은 단순한 음행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적 정체성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지키는 것이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챗지피티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뭔가 이해가 잘 안가는 내용도 지피티가 잘 설명해 주어서 정말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생각하고있다. 다만 내가 어렸을때에 지피티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그나저나 지난 며칠간 정말 너무나 아팠기 때문에 QT를 못했다... 어쩔 수 없었다.
여하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주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하신듯하다. 그리고 사실 좀 많이 엄격하셨던것 같다. 그러나 이 엄격함은 역사적으로 볼때 꼭 필요한 엄격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격하게 하신 덕에 우리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이 두루 퍼졌을수도 있다고 생각이든다. 모든 역사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것. 개입하신것이다. 아, 물론 자잘한 역사들까지는 모르겠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게도 만드니까. 그러나 굵직한 하나님의 계획은 바꾸지 않는것으로 알고있다. 내가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최근에 유튜브의 '잘잘법'이라는 동영상을 몇개 보면서 어떤 연세대학 교수님이 나와서 하는 말씀들을 몇개 들었는데, 성경이 사람의 관점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내가 배우기로는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때문에, 무언가 '절대적'인 위치가 있는것이고 그래서 오류가 없어야한다고 알고있다. 그런데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누가복음은 같은 사건도 다르게 기술하는 부분이 있어서 오류가 나는데 그것을 공관복음인가 그래서 그것들이 '틀리더라도' 그 시대 사람들은 그 틀림을 인정하고 정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교수님은 기독교가 '다양성'을 인정하는 종교라 마음이 아주 좋다고 하시는데, 나는 거기에 긍정되지 않았다. 차라리 물리학이론같이 '다세계' 가설처럼 세계가 여러갈래로 나뉘었고 각각의 우주에서 다른 일들이 일어나서 성경이 다르게 쓰여졌다가 훨씬 맞게 느껴지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다면 그건 인간의 자아가 개입되어서는 안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시각의 한계를 초월해서 쓰여진것이 성경인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 위치가 있는것이고. 여기에 대해서는 나는 다른 관점을 찾아봐야할 듯 하다. 유튜브 댓글에 보니 '성서비평'이라는 학문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댓글에 평범한 기독교인은 보고 신앙이 사라질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덧붙여놓았다. 나는 그러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목사님이 최근 설교에서 '토론식'의 성경공부는 지양하라는듯했다. 그러나 나는 토론이 필요하다. 물론 나혼자하는 토론이지만... 왜냐하면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 토론에 강한 기독교인도 나오지 않겠나? 특히 과학쪽에도 강한. 그러려면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소통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람들과 소통하는법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토론이다. 그러나 물론 '이론'으로 상대를 이길 생각은 없다. 사랑으로 이겨야한다. 우리의 우주의 창조처럼, 이론이나 논리로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 '진리'에 대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말씀에 대해서. '진리'라는것은 인간의 사고로 이해되는게 아니라 양자역학처럼 , 우주상수처럼 그냥 주어진 것이라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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