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32
Exodus 32
출애굽기 32장에서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든 이야기는 모세가 신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불안해하고 우상을 요구한 사건을 묘사합니다. 아론은 예언자이자 대제사장이었지만, 이 순간에는 백성의 요구에 굴복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 1. **왜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강한 압박과 불안감 때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은 모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며 불안해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끌 새로운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아론에게 우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론은 이 요구를 거부하지 않고, 그들의 금붙이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당시 상황에서 백성들을 달래려 한 것일 수도 있으며, 폭동이나 불안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2. **금송아지 사건의 핵심 메시지**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 문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을 이미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없는 동안 우상에 기대려 했습니다. 아론도 그들의 압력에 굴복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 3. **불에 넣었더니 저절로 나왔다는 아론의 변명**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와 금송아지를 본 후, 아론에게 이유를 묻자, 아론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변명을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붙이를 가져오자 그것을 불에 넣었더니 저절로 금송아지가 나왔다고 말합니다(출애굽기 32:24). 하지만 이는 아론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한 과장된 변명입니다. 실제로 그는 백성들의 금붙이를 모아 그것을 녹여 금송아지 형상을 만든 것입니다.
이 변명은 아론이 자신이 한 일의 잘못을 백성들에게 돌리고,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이 벌어진 것처럼 말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와 하나님 앞에서, 이는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었고, 결과적으로 아론은 백성들과 함께 큰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 4. **금송아지 사건의 영적 교훈**
이 사건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우상 숭배 금지**의 교훈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의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형상에 의지하려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종종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고, 스스로 만든 대체물을 찾으려 하는 경향을 반영합니다.
결국, 금송아지 사건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과 아론의 큰 실수를 보여주며, 모세의 중재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공의가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 금송아지 사건 이후 아론이 죽음이라는 형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한 신학적 질문입니다. 아론이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형벌을 피한 이유에 대해 몇 가지 관점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 1. **실제로 금송아지가 저절로 나왔을 가능성**
성경에서 아론이 불에 금붙이를 넣었더니 금송아지가 저절로 나왔다는 것은 사실 과장된 변명으로 보입니다. 이 구절은 아론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지, 실제로 기적적으로 금송아지가 저절로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기 위해 금을 녹여서 구체적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성경 내 다른 부분에서 암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론의 변명은 인간의 죄에 대한 경솔한 태도나 책임 회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 2. **아론의 형벌: 왜 죽음을 피했는가?**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은 분명히 중대한 죄였지만, 그는 즉각적인 형벌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신학적 이유로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 금송아지 사건 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셨지만, 동시에 모세의 중재로 인해 용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중보 기도를 드렸고(출애굽기 32:11-14), 이로 인해 하나님은 모든 백성을 즉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론 역시 모세의 중보로 인해 극단적인 형벌을 피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동시에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아론의 역할**: 아론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의 죄가 크긴 했지만, 그가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재자로서 지속적인 역할을 해야 했기에, 하나님은 그를 즉시 죽음으로 처벌하지 않으셨을 수 있습니다. 아론의 생명은 그가 수행할 더 큰 사명, 즉 대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을 섬기고 속죄 의식을 수행하는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유지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회개와 회복의 기회**: 성경에서 아론이 자신의 죄에 대해 회개했다는 구체적인 구절은 없지만, 이후 아론은 여전히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요한 중재자로 남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을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 3. **이스라엘 백성의 심판**
출애굽기 32장에서 아론은 죽음을 피했지만, 이스라엘 백성 중 우상을 숭배한 많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불태우고 갈아서 백성에게 마시게 했으며, 레위 지파 사람들을 불러 우상 숭배자들을 처벌하게 했습니다(출애굽기 32:20-28). 이로 인해 약 3,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론은 우상 숭배를 주도한 인물이었지만, 모세의 중보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극단적인 처벌을 피한 것입니다.
### 4. **아론의 최종 운명**
아론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즉각적인 형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는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민수기 20장에서 아론은 모세와 함께 므리바에서 물을 내는 사건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은 죄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호르산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민수기 20:12, 24-29). 이것은 그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 결론
아론이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도 즉각적으로 죽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와 모세의 중보 덕분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중요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필요가 있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론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신의 죄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죄를 다루시는 방식에서 공의와 자비의 균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의아한게 아론은 모세와 가까이 있으면서 신분도 제사장이었는데도 금송아지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는게 이상하다. 그의 하나님에대한 배신은 누구보다도 큰 게 아니었을까. 그는 제사장이었는데,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자인데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죽음의 형벌을 받지 않은게 이상하다. 제사장은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새로 세울 수도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신분 덕분에 살아남았다면 그건 공정하지 못하지 않을까.
그러나 성경은 성경이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니 그런 의미를 두고 성경을 해석해야한다. 다만 세상적으로 보기에는 의문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할때에는 정말로 성경을 최대한 중심에 두고, 하나님의 원리를 최대한 적용해서 읽어야 한다는것을 점점 더 깨닳아 가고 있는 중이다.
가장 중요한 1원리는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것이고, 그 외에는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공의로우시다, 등등이 있다.
홍수로 사람들을 멸했을때도 그것이 잔인하고 비정하다고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 죽은 사람들에게 어쩌면 다른 기회를 주셨을 수도 있는데 성경에는 굳이 적히지 않았다고 그렇게 받아들이는것이 좋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니까.
예컨대, 그때의 인류는 너무나 타락해서 멸하지 않았더라면 현대와는 다른 문명이 세워졌을지도 모른다. 디스토피아같은 세상이 펼쳐졌을지도 모르는 일. 과거의 한 사건이 미래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필요에 의해서 인류는 멸망당한것인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잔인하시지 않다고 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나는 사실 약간 신비주의자인데, 내가 신비주의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더라도 전통교회의 주장을 될 수 있는한 중요시해야한다고 생각이 들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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