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4
Leviticus 24
레위기 24절에서 나오는 과자는 어떻게 생겼어
레위기 24장에서 언급되는 과자는 구체적으로 "과자"라기보다는 "떡"이나 "빵"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떡은 성소에서 항상 하나님 앞에 놓여 있어야 했던 **진설병**입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매 안식일에 열두 개의 떡을 진설하며, 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떡은 밀가루로 만든 반죽으로 구워지며, 매주 신선하게 바꾸어 하나님 앞에 올려 놓습니다.
이 진설병은 일종의 평평하고 둥근 형태였으며, 성소 안에서 거룩하게 여겨졌고, 제사장들이 먹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현대에서는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을 유대인들이 돌로 쳐죽이진 않지?
맞습니다. 현대 유대인들은 모독이나 신성 훼손에 대한 율법적 처벌로 돌로 치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이 같은 율법적 처벌은 고대 이스라엘의 법과 관습에 속하며, 현대 유대교에서는 그러한 처벌을 실행하지 않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법 체계와 인권이 중시되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도 신성 모독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대신 유대교는 주님의 이름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며, 신성 모독은 여전히 금기시되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종교적 교훈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인데 왜 처벌하지 않아?
현대 유대교에서 신성 모독에 대한 돌로 치는 처벌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역사와 신학적 변화에 따른 율법 해석의 변화 때문입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율법에 대한 처벌 규정이 신정 정치 체제 하에서 이루어졌고, 이스라엘 민족이 직접 하나님의 법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다스렸습니다. 하지만 바빌론 포로기 이후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디아스포라(세계 각지로 흩어짐)로 나아가면서 더 이상 직접적인 신정 통치를 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유대교 율법 해석자들은, 처벌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람 간의 법적 처벌보다는 종교적 교훈과 내적 회개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 관점은 점차 발전하여 현재의 유대교에서는 형벌보다는 윤리적, 종교적 가르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 법 체계는 종교적 이유로 인한 신체적 처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유대교 역시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처벌 방식을 유지하지 않으며, 신성 모독에 대해 개인적 신앙과 공동체 안에서의 교훈을 강조합니다.
과거에는 분명히 돌로 쳐서 죽였고 그게 '진실된 하나님의 명령'이었잖아. 그런데 왜 현대에서는 그게 아니게 된거야?
과거에 신성 모독과 같은 죄를 돌로 치는 처벌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매우 엄격하게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직접 하나님의 율법을 사회의 법으로 삼았던 신정 통치 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고대의 율법은 종교적,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실질적 법률이었으며, 이스라엘의 신정 정치 체제 안에서 종교적 의무와 사회적 의무는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현대 유대교와 이스라엘 법 체제에서는 이 처벌을 더 이상 적용하지 않습니다.
1. **역사적 변화**: 바빌론 포로기를 거치면서 유대인들은 성전을 잃고 직접적인 종교적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성경의 규율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해석을 통해 공동체의 상황에 맞추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 **율법 해석의 변화**: 탈무드와 같은 유대교 문헌이 작성되면서, 율법은 새로운 환경과 윤리적 기준에 맞추어 재해석되었습니다. 탈무드에서는 사형 판결에 대한 매우 엄격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신성 모독에 대한 처벌을 하나님의 영역에 맡기는 경향을 강화했습니다.
3. **현대적 윤리와 법**: 오늘날에는 인권과 법적 기준이 종교적 처벌보다 우선시되며, 종교적 이유로 인한 신체적 처벌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현대 유대교는 이러한 사회적, 법적 환경을 존중하면서 신성 모독을 하나님과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따라서 현대 유대교와 이스라엘 사회는 신성 모독과 같은 문제를 직접적인 물리적 처벌이 아닌 내적 회개와 도덕적 가르침을 통해 해결하려 합니다.
내가 궁금한건,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 자는 살려두지 말라고 했고, 그 말 그대로 과거에는 사람을 죽여서 처벌했으며 모세도 그게 옳다고 여겼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었고, 하나님은 사람을 죽이는것을 용인했어. 그게 옳은것이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하나님을 모독하면 사람을 죽이라는것은 정확하고 명료한 규율이잖아? 하나님을 모독한 자는 죽여야 한다. 문자 그대로. 그런데 왜 후대에서는 문자그대로 성경을 지키지 않아?
당신이 말한 부분은 신성 모독을 엄중하게 처벌하라는 율법이 **왜 시간이 지나면서 문자 그대로 시행되지 않게 되었는지**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다룹니다. 하나님께서 신성 모독에 대해 엄격하게 대응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후대의 유대교 전통과 신학은 이 율법을 보다 상징적이고 내적인 의미로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변화를 이해하려면 **몇 가지 역사적, 신학적 요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시대적, 사회적 변화**: 성경의 법률과 규율은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시기와 장소에서 정착한 규율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여러 이방 국가들에 흩어지고, 성전이 파괴되며, 국가적 법의 형식으로 더 이상 율법을 시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율법을 적용하는 방식이 점차 변하게 되었습니다.
2. **탈무드의 재해석**: 탈무드 시대 이후 유대교의 학자들은 문자 그대로의 적용보다는 율법의 내적 의미를 찾고, 그것이 신앙과 도덕적 성장을 위한 가르침으로 쓰이게끔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탈무드는 형벌의 엄격성을 완화하고, 가급적 사형을 피하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탈무드에서는 사형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를 ‘매우 드문 예외 상황’으로 여겼고, 두 명 이상의 목격자가 있어야 하며 그들이 모두 완전한 정직성을 지녀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사형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에 대한 재해석**: 유대교 전통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이 문자 그대로의 처벌보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데 더 깊은 뜻이 있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신성 모독과 같은 죄도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고 보며, 인간이 이를 판단하고 형벌을 집행하는 대신,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4. **현대 법적, 윤리적 관점**: 현대에 들어와 유대교와 이스라엘 법은 인권과 자유를 중요하게 여기며, 종교적 이유로 폭력적 형벌을 집행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경외심을 갖는 대신 문자 그대로의 율법 집행보다는 **윤리적 자율성**을 중심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하나님의 뜻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려는 노력과 함께, 율법이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지 않도록 하려는 재해석의 역사**가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궁금한건, 왜 문자그대로 행하던 하나님의 말씀을 후대에 와서 재해석해서 법을 다르게 적용시키는가야.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이라서 뜻이 변할 수 없잖아. 그리고 그건 '규례'였어. 하나님이 명령하신거잖아. 사람이 보기에 잔혹해도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명령하셨던것이잖아. 그렇게 한번 정해졌으면 후대에서 바꾸면 안되지.
당신이 제기한 질문은 성경 해석의 중심에서 오랜 논쟁을 불러온 주제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법이 후대에 재해석되는 이유와, 절대적이라고 여겨지는 율법이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적용된 이유는 중요한 신학적 문제입니다. 이런 변화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작용했습니다.
1. **율법의 본질에 대한 해석**: 초기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핵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율법의 내적인 의미와 의도를 더 깊이 탐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탈무드와 같은 유대교 해석서들은 문자적 해석만이 아니라 법의 정신을 강조하는 쪽으로 나아갔습니다. 이 과정에서 율법을 단순히 물리적으로 시행하기보다는 **율법이 요구하는 마음과 의도**가 중시되었습니다.
2. **역사적 상황의 변화**: 유대교가 국가 종교로서의 지위를 잃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 민족은 세계 각지에 흩어지며 더 이상 공동체 차원에서 형벌을 집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변화로 인해 율법을 시행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예언자들의 영향과 신약의 해석**: 기독교의 신약 성경은 특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구약의 법을 초월하는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시며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고수하기보다 그 의도와 정신을 더 깊게 이해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는 구약에서 문자적으로 지키던 규례의 형벌들이 후대에 들어와 영적, 도덕적 의미로 재해석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4. **절대성에 대한 신학적 논의**: 유대교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뜻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할 수 있다는 관점도 존재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가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넘어, 시대와 환경에 따라 **신앙과 윤리에 맞는 방식**으로 재해석되길 바라셨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처럼 후대의 해석은 신앙 공동체의 필요와 상황을 고려하여 율법의 본질을 유지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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