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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의의 진리 판넨베르크 조직 신학 판넨베르크 조직 신학 1 36p 2. 교의의 진리 교의학은 일반적으로 교의(Dogma)혹은 그리스도교 교리(가르침)에 관한 "학문"으로 통용된다. 교의라는 단어는 "판결"이나 "구속력 있는 의견"으로 이해되면서 그리스도교적인 가르침에 더해서 전승되었다. 여러 철학적 학파들의 "교의들"과 같이 어떤 "학문적 견해"라는 특별한 의미로 이해되었다. 교의의 그리스도교적 개념이 철학적 학파들의 학설과 유비 관계에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철학적 이론들과 정면으로 대립 - > 왜냐하면 그 교의 개념은 "인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 말하고 가르치는 것"(Athenagoras leg.2,1)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인간적인 가르침의 견해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리.. 2024. 3. 25.
240324 QT 나를 깨끗게 하기 위해 나에게 불행을 보내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님이 들어오시는 순간,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들은 모두 내보내야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성령님이 오시길 간구했고 제게 기쁨과 평안을 주길 기대했지만, 그와 달리 끔찍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는 오히려 그분이 오셨다는 증거이며,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있는 "돈 바꾸는 사람들", 즉 주님의 성전을 자아실현을 위한 매매 장소로 사용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내쫓고 계신 것입니다. 사교적으로 되어서 사람을 다루는 데 능숙해져라. 지혜로워져라. 약삭빠르게 타협하면 모든 것이 네 통제권 아래 들어올 것이다. 이런 것들은 세상이 기반을 두고 있는 평화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사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관점을 제외한 모든 관.. 2024. 3. 24.
오늘의 QT 오스왈드 챔버스 15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훈련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또 그분이 우리와 함께 걸으시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때야 비로소 "시간"과 "영원"은 하나가 되어 놀라운 생명의 "관계"에 흡수가 됩니다. 이 화합은 그저 신비주의적인 묵상이 아닌, "역동하는 강렬한 완성체"입니다. 잔잔하고 고요한 "정체된 평화"가 아닌 "완전히 움직이는 안식"인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너무 기이하게도 비극의 순간에서야 이전에는 결코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을 직면합니다. 평화로울 때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상태에 조금이라도 신경 쓰는 사람이 우리 중에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우리가 마음 아파하는 전쟁이나 그 폐허가 된 흔적들이 아닌 우리의 마음 상태입니다. 묵상 질문: "완전히 움직이는.. 202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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